전경련회장단 12년만의 야 방문/박병석 정치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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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년전 우리당이 전경련에 대화를 요청했으나 대답이 없었는데 오늘 전경련회장단의 방문을 받고 보니 세상이 바뀌긴 많이 바뀐 모양이다.』
김대중민주당대표가 6일 오전 유창순회장을 비롯한 전경련회장단을 만나 한 첫말이다
전경련이 야당 당사를 찾아가 의견을 교환한 것은 80년 3김시절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과도기이고 또 여야의 구분을 굳이 할 계제가 아니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대기업을 회원으로 한 전경련이 권력의 향방이 불투명한 상황에 앞으로의 「보신」을 위한 자구책을 취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80년과 지금은 큰 차이가 있다. 80년엔 그야말로 앞날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예방한 것에 불과했지만 이번의 3당 연쇄방문은 정경관계의 재정립을 겨냥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경련은 「새 정부에 대한 정책제안서」를 전달하고 경제 전반에 대한 의견을 교환하고자 했다. 이를 바탕으로 정·재계관계의 새로운 틀을 만들겠다는 것이 속셈이기도 하다.
전경련이 대선을 앞두고 돈 안드는 선거를 촉구한 것이 이같은 시도를 뒷받침한다.
특히 그동안 야당인사,그중에서도 김대중대표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가져왔던 재계총수들이 많았던 것을 감안하면 전경련의 이같은 변신 몸부림은 평가와 주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전경련회장단은 『기업인들의 생각도 많이 달라지고 건전해지고 있다』며 전경련 회원월례회에 내용에 구애됨이 없는 강연을 해달라고 김대중대표를 초청까지 했다.
양측은 이날 민주화시대의 바람직한 정치인상과 기업인상에 대한 입장,재계측의 김 대표에 대한 부정적 선입견에 대한 솔직한 의견도 개진했다.
이날 회동은 공익우선·기업윤리를 강조해온 비기업인출신 유 회장의 뜻이 적잖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나 변화하는 재계의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정계와 재계는 이번 회동을 상호이해를 넓히는 계기로 활용해 밀실회합을 통한 정경유착시대를 청산하는 출발점으로 삼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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