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38. 김형욱 중정부장<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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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욱 부장은 한국 골프 발전에 큰 도움을 준 후원자였다. [중앙포토]

나는 김형욱 중앙정보부장이 먼저 말을 할 때까지 기다렸다. 사실 무서워서 아무 소리도 못했다.

"차 마셔." 김 부장이 커피를 권하자 나는 속으로 "이제 끌려가 매를 맞는 일은 없겠구나" 하고 안심했다.

"어떻게 된 거야? 사실대로 얘기하라우." 김 부장은 특유의 이북 사투리로 물었다.

"부장님, 심려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제가 어떻게 그렇게 하겠습니까…. 저도 대회에 출전했기 때문에 제가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캐디와 현장과장이 이야기 해 준 것입니다"라고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김 부장은 내 설명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한 듯 "알았어. 조사해 보면 알지"라고 말했다. 나는 이때다 싶어 최재봉 서울컨트리클럽 전무의 비리를 상세하게 모두 이야기를 했다. 당시 최 전무는 악명이 높았다. 프로들에게 술을 사라고 강요하기도 했고, 여직원을 건드리는 등 만행을 일삼았다. 그래서 그 이야기까지 다 해버렸다. 그랬더니 김 부장은 "그게 사실인가"라고 되물었다.

나는 신바람이 나서 "그게 사실이 아니면 제가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습니까. 맹세코 사실입니다"라고 힘주어 대답했다. 캄캄했던 눈앞이 환해지는 기분이었다.

한 20분 정도 이야기가 오간 뒤 김 부장은 "그래 알았어. 골프를 치다가 생긴 일인데. 그만 돌아가 봐"라고 말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하자 김 부장은 비서를 부르더니 "가서 골프채 갖고 오라우"라고 지시했다.

"유(You), 이거 한 번 써봐라. 그리고 공 열심히 쳐라."

김 부장은 어디서 선물받은 듯한 최고급 벤호건 아펙스 아이언 한 세트를 내게 주며 격려까지 해줬다.

그 이후 김 부장은 사건 내막을 상세히 조사한 것 같았다. 내 말이 사실인 것을 알게 됐고 그뒤 나를 더욱 신임하게 됐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온 기분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속 시원히 털어 놓는다. 정말 속이 후련하다.

내가 김 부장을 다시 만난 것은 1970년 아르헨티나에서였다. 나는 이일안 프로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카나디언컵(지금의 월드컵)에 한국대표로 참가했다. 김 부장은 남미를 여행하던 중 우리를 만났고, 밥을 사주며 반갑게 대해줬다. 귀국길은 김 부장 일행과 동행했다.

뉴욕에 들렀는데 그 곳엔 김 부장의 가족들이 살고 있었다. 김 부장 가족이 살던 곳은 70층 정도 되는 고층아파트였는데, 집은 50평 쯤 되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우리는 김 부장 집에서 하루 묵고 귀국길에 올랐다.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역사가 그를 어떻게 평가하든, 김형욱 부장은 한국골프 발전에 큰 도움을 준 분이었다. 권력 무상, 인생 무상이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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