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국민당 돈문제로 내환/대선 앞두고 「유전유죄」 아이러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정 대표 돈많아 많이 쓸 것” 막연한 기대 부담/공약 안지켜주면 탈당결행 연판장 나돌아
본격적인 대선을 앞두고 국민당이 내홍을 앓고 있다. 정주영대표는 승리를 확신한다고 호언하면서 헬기를 타고 전국을 누비며 대선운동 본격화를 독려하고 있으나 대선의 걸림돌은 오히려 당내에 잠재하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당의 속앓이는 남다르다. 흔히 말하는 무전유죄가 아니라 유전유죄라는 아이러니기 때문이다. 돈이 많아 오히려 괴롭다는 얘기다. 「돈이 많다」는 얘기는 단순히 정 대표의 개인재산이 많다는 얘기가 아니며,돈을 많이 쓰고 있다는 얘기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 대표는 돈이 많기 때문에 돈을 많이 쓸 것』이라고 막연히 기대한다는 사실이다.
정 대표가 돈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선거에 쓸 돈이 일반적인 기대를 충족시킬 만큼 되느냐』는 의문이다. 문제는 『정 대표가 일반적인 기대만큼 돈을 쓰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정 대표의 돈풀기가 일반적인 기대치를 밑돌기에 문제가 생긴다는 얘기다. 벗어버릴 수 없는 원죄라는 느낌마저 준다.
국민당의 내우는 대부분 이같은 돈문제다. 대표적인 내우인 소속의원의 끊임없는 탈당설이 그렇다. 총선직후부터 국민당소속 의원들중 일부는 계속 탈당을 심각하게 얘기해왔다. 많은 경우 『빚을 져가며 총선에 이겼는데 당에서 지원을 안해준다』라는 불만이 탈당설의 내인이었다.
여기서 「지원」이란 당연히 금전적인 지원,시쳇말로 『빚갚아달라』는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다른 당에서는 나올 수 없는 얘기가 국민당에서는 심각하게 제기됐다. 역시 『정 대표는 돈이 많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나온 기대 때문이다. 정 대표가 이들의 요구를 어떻게해소해줬는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막상 탈당한 사람은 엉뚱하게도 선거빚을 질 필요가 없었던 전국구 조윤형의원이었다.
「국민당의 와해설」을 동반한 소속의원들의 탈당설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실제로 노태우대통령의 당적이탈 직후인 지난 22일 국민당에는 보기 드문 재선의원이자 그래서 중앙 정치연수원장이라는 중책까지 맡고 있던 김찬우의원이 탈당했다.
그런데 이번에 탈당한 김 의원도 조 의원과 마찬가지로 돈때문에 탈당한 것이 아니라는 점이 흥미롭다. 결국 돈을 요구해온 의원들은 아직 아무도 탈당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단지 탈당을 얘기해왔을 뿐이다.
지난 9월초 국민당소속 의원 7명이 『총선 당시의 공약을 이행해주지 않으면 탈당도 불사한다』는 내용의 연판장에 서명해 정 대표에게 올렸었다. 『돈을 지원해달라』는 노골적인 얘기가 아니라 『공약했던 무공해 공장건설 등을 이행해달라』는 투자요청이지만 어차피 「돈들 일」이긴 마찬가지다. 워낙 정 대표가 공약한 사실이기에 이행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대부분 공약이 공약으로 그쳐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 정치풍토에 비해 문제가 심각한 것도 높은 기대치 때문이라 할 수 있다. 7명중 한사람으로 알려진 김 의원이 탈당했고 앞으로 몇사람이 더 탈당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서명의원들 대부분이 탈당설을 스스로 부인하고 있으며,국민당에서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현단계에서는 김영삼민자당총재와의 30년 정치동지였던 박희부의원 한 사람의 탈당만이 가능성 높은 상황이다. 박 의원의 연판장서명은 공약이행 요구라기보다 탈당명분 축적이라는 측면이 오히려 강하다는 것이 주위의 평이다.
돈이 많아 빚어지는 내홍은 소속의원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원외인 지구당의원들도 돈이 안타깝지는 마찬가지다. 오히려 지난 총선에서 떨어진 위원장들중 선거자금을 많이 쓴 경우는 현역의원들보다 빚에 더 많이 시달릴 수 밖에 없다. 실제로 원외지구당위원장들은 중앙당에서 조직확대를 지시할 때마다 『돈없이 조직없다』는 현실론을 주장하며 아우성이다. 이들 역시 정 대표의 돈에 대한 막연한 기대치가 높은 선거운동원들을 이끌고 가야하기 때문에 다른 당,특히 야당인 민주당에 비해 돈이 더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국민당이 가장 우려하는 것이 바로 이점이다. 기대치가 너무 높아 적당한(?) 수준의 자금살포로는 유권자들과 운동원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어렵다는 우려다. 다른 당에 비해 급조된 탓에 대선운동과정에서 필수적으로 점증될 자금이 유통과정에서 소실될 우려가 높기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정 대표는 지금까지의 대통령후보들과 전혀 다른 문제로 고민중이다. 한국 정치사에 전혀 없었던 이색 대권주자인 정 대표의 대선승패는 바로 이 문제의 해법에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오병상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