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밑 교류·협력 불가피/정부­민자당 관계 어떻게 변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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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국정마비 막기 위해 대화 필요/정보·자금 제한받아 당엔 부담
노태우대통령의 민자당 탈당은 정치환경을 뒤흔들면서 정부와 정당의 새로운 관계정립을 숙제로 제기하고 있다.
특히 집권당에서 제1당으로 위상이 바뀐 민자당과 정부의 관계가 어떻게 정립·발전하느냐는 향후 국정의 방향에 영향을 준다. 짧게는 대선 결과가 나올 3개월여,길게는 5개월간 무소속 대통령 정부가 국정을 원활히 수행하려면 정당과의 관계정립이 중요하다.
지금 당장은 정부·다수당의 관계가 대립적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으로 보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정부·민자당간 「특수관계」의 고리를 끊으려는 민주·국민당의 집요한 경계가 있고 대선 결과를 주시하며 처신하기 쉬운 관료집단의 속성 등으로 인해 정부·민자당의 관계가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변질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대통령이 탈당한 민자당은 당장 당정관계를 새롭게 조정해야 할 판이다.
그동안은 사실상 「당=정부」라는 등식이 존재해 왔다. 이런 바탕에서 노 대통령 정부는 당에 자금·조직·행정을 지원해 왔고 노­김 주례회동 등 긴밀한 당정협의를 가져왔다.
이제 다수당의 위치에 선 민자당 지도부는 새 관계의 점검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직 뚜렷한 해결방식을 못찾고 있다. 사태가 너무 갑작스레 터졌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나온 분석을 종합해 보면 우선 노­김 회동,관계기관 대책회의 같은 공식적인 고위대화는 더 이상 공개리에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자금·정보면에서도 당정협조가 끊어지거나 훨씬 약해져 당으로선 막대한 부담을 떠안을 전망이다. 그러나 당 수뇌부 사이에선 물밑으로 뭔가 교류·협력이 계속되지 않겠느냐는 기대감이 있고 국정 전반에 대한 당정협의는 지속될 것으로 보는 쪽이 우세하다. 이 경우 『이게 뭐가 중립이냐』는 야당의 공세와 국민의 의혹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또 다른 숙제다.
김영삼총재 주변 등 당지도부와 정책팀은 법안통과 등 원만한 국정운영을 위해선 당정협의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당지도부는 민자당이 대통령과는 관계가 끊어졌지만 ▲현 정권이 민자당의 전신인 민정당에서 탄생됐고 ▲원내 과반수 당이며 ▲정부를 지지하는 정당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김 총재는 『다수당인 우리 당의 지원 없이는 노 대통령이 임기를 원만히 마무리 지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말하자면 대통령에게 가장 중요한 국정마비를 막기 위해선 정책당정협의는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당 정책관계자들도 현실적 필요성을 들어 김 총재 의견에 동조하고 있다. 고위관계자는 19일 『예를 들어 정부가 6백만섬·5% 인상이라는 추곡수매 계획을 세웠다 하자. 제1당인 우리와 협의가 없으면 우리는 대선을 위해 1천만섬·10%를 주장할 것이다. 그럴때 정부가 우리와 대화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그동안은 당으로서 맘에 들지 않는 정책도 정부에서 「대통령 결재를 받았다」며 밀어붙인 경우가 많았다』며 『이제는 정부가 우리 눈치를 봐야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순수한 정책관계의 협조지 당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정보·자금 등에 연결되는 당정협조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당장 민자당은 자금조달 문제에 봉착하게 되어 있다. 박정희대통령 때부터 여당은 사무처요원 임금 등 살림비용을 대통령으로부터 타다 썼다. 하지만 이번 사태로 이런 유대는 기대할 수 없게 됐다. 더욱 중요한 대선자금에 있어선 『이제부터는 YS가 살림을 꾸려야 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도움이 있더라도 기대치 이하일 것이다.
당의 또 다른 타격은 정보손실을 감수해야 하는 점이다. 중립내각이 들어서면 안기부·검찰·경찰 등에서 들어오는 정보의 흐름이 원천봉쇄 되거나 대폭 차단될 가능성이 높다. 한 당직자는 『특히 안기부 정보가 줄어들면 큰 손실』이라고 토로했다.
물론 김 총재의 비공식 채널이 있고 당 정세분석위 등을 통한 비공식 당정 정보교류가 가능하지만 양은 상당히 제한받을 것이란 분석이 유력하다.
또 중립내각이 구성되면 논리상 대부분 민자 당적을 가지고 있는 장관들은 교체되거나 당적을 포기해야 한다. 김종호정무1장관은 이미 사의를 표명했다.
문제는 청와대 참모진들의 당적 문제다. 무당적 대통령의 참모가 당적을 계속 가질 경우 야당이 시비를 걸 소지가 있다. 김중권정무수석의 경우 지구당위원장(울진)이다. 그가 당적을 떠날 경우 지구당은 사고당부가 된다.
정부의 실·국장급에서 형식적으로는 사직했지만 실질적으로는 승진을 위한 징검다리로 당에 온 대다수 전문위원들의 처리문제도 쉽지 않다.
김 총재에 대한 경찰 경호도 재검토 대상이다. 최근 시경은 무술경관 8명(지휘자 경정급)을 파견,김 총재 경호를 맡게 하고 있다. 정부는 호위경관을 철수하든지,타당 후보들에게도 똑같이 붙여야 하게 되어있다.
그러나 이같은 여러 현상은 대선 이전까지의 단기적이고 일시적 현상일 수 있다. 오히려 이같은 과정을 거쳐 당선될 대통령과 정부는 정통성의 기반이 훨씬 강화되고 강력한 통치력을 구사할게 틀림없다. 때문에 김 총재의 당선 가능성이 높으면 정부의 동요는 의외로 적을지 모른다는 것이 민자당의 관측이기도 하다.<김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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