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코리아 역사 바뀌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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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뇌 장착 '한글 모아쓰기 텔레타이프'개발 뉴스를 다룬 1958년 12월 1일자 신문 기사.

한국에서 개발한 첫 컴퓨터는 어떤 것이고, 누가 개발했을까. 최근 한양대가 1962년 당시 이 대학 이만영(현 경희대 석좌교수) 교수가 개발한 것이 한국 최초의 컴퓨터라고 공개했다. 그러나 그보다 4년이나 앞선 58년 개발된 컴퓨터가 있다는 사실이 처음으로 밝혀졌다. 개발자는 당시 전남대 물리학과 송계범(작고) 교수다. 송 교수는 재독 철학자이면서 반체제 인사로 널리 알려진 송두율 교수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경희대 전파공학과 진용옥 교수는 그 당시 송계범 교수가 개발한 '전기 뇌를 장착한 텔레타이프'를 일제히 보도한 1958년 12월 1일자 주요 신문, 일본오끼전기공업㈜이 기술을 받아 개발한 상용제품(M-300) 카탈로그, 관련자들의 증언을 1일 열리는 정보통신부 산하 정보문화센터 주최 '정보통신 사료유물전(서울 광화문 통신센터)'에서 공개한다. 송계범 교수는 연구실 시제품을 개발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오끼전기공업을 통해 상용제품을 개발했다. 일본오끼전기공업의 당시 카탈로그에는 송계범 교수가 M-300을 발명했다고 쓰여 있다. 이를 62년 체신부(현 정보통신부)가 6대, 중소기업은행이 12대를 수입해 10여 년간 사용했었다.

전기 뇌는 초보적이기는 하지만 외부에서 프로그램할 수 있는 일종의 중앙처리장치(CPU)라는 게 진 교수의 분석이다. 진 교수는 체신고교 재학시절 체신부에서 수입한 송 교수의 인쇄전신기를 수리한 경험도 있다. 그러나 국내에는 연구실 시제품이나 상용제품 모두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다.

송 교수는 미국산 영문 인쇄전신기(텔레타이프)에 중앙처리장치(전기 뇌)를 붙여 한글 모아쓰기가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그 당시 신문에 보도된 것은 연구실 시제품이었다. 영문 인쇄전신기는 영문 알파벳을 일렬로 쓰는 기능밖에 없었다. 송 교수는 스위치 기능을 하는 부품인 릴레이 163개를 조합해 한글 자모로 완벽한 한글을 쓸 수 있게 했다. 즉, 자판에서 한글을 풀어쓰기로 입력하면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으로 모아쓰기가 된다. 이는 릴레이를 외부에서 연결하는 방법을 달리하면 영문처럼 한글을 풀어쓰기 할 수도 있게 한다.

진 교수는 이만영 교수의 컴퓨터와 송계범 교수의 '전기 뇌를 장착한 텔레타이프'를 이렇게 비교했다. 이 교수 것은 단순 연산용이며 아날로그식이다. 또 외부에서 프로그램을 바꿀 수 없다. 송 교수 것은 인쇄 전신용이며 디지털식이다. 프로그램을 외부에서 바꿀 수도 있다. 다만, 진공관식(이만영)이 아닌 릴레이(송계범)를 이용했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 이는 인류 최초의 컴퓨터로 치는 하버드대의 MARK1(릴레이)과 최초의 전자식 컴퓨터인 펜실베이니아대의 에니악(진공관)과의 차이와 유사하다.

송계범 교수가 1966년 5월 19일 자신이 발명한 텔렉스가 설치된 중앙일보에 와 기계를 들여다 보고 있다.이 텔렉스는 '전기뇌 장착 인쇄전신기'와는 다른 것이다.[중앙포토]


진 교수는 앞으로 학계와 공동으로 한국 최초의 컴퓨터가 어느 것인지를 검증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한국의 정보통신(IT) 역사가 67년 IBM 401 컴퓨터를 도입한 것을 최초로 보는 시각은 바로잡아야 하기 때문이다.

박방주 과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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