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마무리를 주시한다(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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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연기군 관권선거사건은 시일이 갈수록 그 관권개입의 전모와 정확한 진상이 규명되기는 커녕 오히려 아리송한 상태에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상태로 가다가는 한준수씨의 2차 폭로내용인 「관계기관 대책회의」에 대한 진상규명은 말할 것도 없고 1차 폭로내용인 연기군의 관권개입 내용조차도 제대로 밝혀질 수 있을는지 의구심을 갖게 된다.
국민들의 주된 관심이 단순히 연기군에서 몇몇 특정인사들이 어떻게 선거법을 위반했는지를 알려고 하는데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비단 지난 3·24총선때만이 아니라 정부수립이후 지금까지 선거때마다 관권개입이 있어 왔다는 것은 수많은 국민들이 보고 듣고 경험해서 알고 있다. 또 그러한 관권개입을 위해 관계기관들의 대책회의가 열려왔다는 것도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었던 일이다. 국민들이 한씨의 폭로내용에 접하고도 크게 동요되지 않고 있는 것도 그 내용이 중대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새삼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일종의 정치적 체념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국민들은 이제까지의 정치사는 그러했을지라도 이번 「폭로」를 계기로 적어도 앞으로는 우리 정치의 후진성을 웅변해주는 관권선거가 근절돼 공정한 선거풍토가 확립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을 것이다. 또 그런 차원에서 정부에 과연 그러한 의지가 있는가를 지켜보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수사는 유감스럽게도 국민의 이러한 최소한의 기대조차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폭로자는 서둘러 구속한데 비해 다른 관련자들은 「사실확인」이라는 이유로 소환수사만 거듭하고 있어 형평을 잃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당국의 수사가 이렇게 지지부진하기 때문에 일부에선 공소시효만료일인 23일까지 도지사나 임재길씨에 대한 수사로 시일을 끌어 더 윗선에 대한 수사는 유야무야해 버리려는 생각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오고 있다.
관련자들이 입을 맞춘듯 한씨의 폭로내용을 전면 부인하거나,부인할 수 없는 자금에 대해서는 선거자금이 아닌 격려금이었다고 말해 수사를 지연시키고 있는데서 그러한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검찰측도 대책회의 부분에 대해서는 법률적 해석이 앞서야 할 문제라는 이유로 아예 진상규명마저 제쳐놓고 있는 형편이다.
폭로자만 구속해놓은 불공평한 수사,수십종의 증거물을 사전에 확보하고도 당사자의 부인에 막혀 지지부진한 수사,도지사 윗선이나 관계기관 대책회의는 염두에도 없는듯한 수사,행정력의 개입 실태보다는 개인의 선거법 위반여부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수사…. 이를 보면서 국민들이 정부가 지난날을 반성하고 더 이상은 관권개입을 안하기로 결심했다고 과연 믿을 수 있겠는가.
검찰은 이 사건 수사를 지켜보는 국민의 따가운 눈초리를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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