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화원」의 온정… 훈훈한 추석/불우이웃돕는 부산 「두발로」 모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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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명절때면 소년가장·노인에 성금전달
『우리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위해 구두약이 묻은 돈을 조금씩 보탰습니다.』
부산시 서면일대에서 구두를 닦는 미화원 47명이 「두발로」라는 모임을 만들어 어렵게 모은 돈을 조금씩 보태 지난 4년동안 추석절 등 명절은 물론 매월 어려운 이웃을 남몰래 도와 온 사실이 알려져 잔잔한 화젯거리로 번져가고 있다.
모임의 이름은 자신들이 매일 닦는 구두를 신은 두발을 나타내는 뜻에서 지어졌다. 이들이 이웃을 돕기 시작한 것은 88년 11월부터. 서면일대에서 오랫동안 구두를 닦으며 자연스레 서로 친하게 지내게 된 이들은 『비록 하루종일 시커먼 구두약을 얼굴에 묻혀가며 살지만 약칠하는 손에 더러운 구두가 깨끗해지듯 뭔가 우리사회를 밝게하는 일을 해보자』며 그해 4월 첫 모임을 가졌다. 이후 매월 어렵게 번돈중 1만원씩을 회비로 적립,구청이 소개해준 소년소녀가장 2가구와 무의탁노인 3가구에 매달 10만원씩을 도와 왔다.
추석과 설날 등 명절때는 이들외에도 생활이 어려운 5가구를 별도로 골라 10만원씩을 전해 밝은 명절을 보낼 수 있도록 했다.
『회원들 모두 찢어질듯한 가난속에서 자라 명절때면 주위의 따뜻한 온정이 무엇보다 그리웠던 기억들을 간직하고 있는 탓에 이때는 신경을 특히 많이 쓰자는 의견들이 모아졌지요.』
이들은 8일에도 혼자 어렵게 가정을 꾸려가던 큰아들의 갑작스런 교통사고로 생계가 막막해 진 박태녀씨(41·부산시 연지동) 등에게 추석선물과 함께 10만원씩을 전하고 『어려울 때일수록 굳세게 살면 분명 좋은 날이 온다』며 용기를 잊지 말것을 당부하기도 했다.
『우리 형편도 어렵지만 담배 살 돈과 대포 한잔 할 돈을 아껴 어려운 이웃을 돕기 시작하면서 온몸에 구두약을 묻혀가며 구두를 닦아도 신나고 즐겁기만 합니다.』
부전동 한국전력 입구 모아호텔에서 구두를 닦고 있다는 이 모임회장 김성수씨(40·부산시 모라동)는 『전 회원들이 앞으로 좀더 열심히 구두를 닦고 돈을 아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도록 노력키로 다짐했다』며 밝게 웃었다.<부산=김관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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