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장례비 자율화(분수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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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사례로 일컬어지는 관혼상제는 사람이 태어나서 죽기까지 누구나 겪어야할 중요한 통과의례였다. 특히 유교적 사상이 뿌리깊이 자리하고 있던 우리네 전통사회에서는 아무리 헐벗고 굶주려도 이들 통과의례만큼은 격식대로 치러야 사람구실을 제대로 해내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성년식이나 성인식에 해당하는 관례와 돌아가신 부모나 조상을 추모하는 제례는 현대화 사회로 이행되가는 과정에서 그 중요성이 차츰 감소되는 경향을 보여왔으나 혼례와 상례는 아직도 될 수 있는한 화려하고 장엄하게 치러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
그러나 결혼식과 장례식을 화려하고 장엄하게 치러야 한다는 의식속에는 그것이 당사자의 중요한 통과의례이면서 동시에 대외적인 과시라든가 체면치레에 한몫 거든다는 생각이 함께 자리하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생활이 아무리 궁핍하더라도 결혼식과 장례식을 거창하게 치러야 주위 사람들에게 떳떳하고 할일을 다했다는 전통적 사고방식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당사자의 형편에 맞지 않는 결혼식·장례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어떤 문필가는 가장 검소한 결혼식·장례식과 가장 호화로운 결혼식·장례식 비용의 비율이 1천분의 1쯤 될 것이라고 쓴 일이 있지만 실제로 그 비율은 무한대일수도 있다. 가령 냉수 떠놓고 맞절 하는 것으로 결혼식을 마칠수도 있다면 수억원의 거금을 들인 초호화판 결혼식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사자만의 일이 아니라 주변이나 이웃에도 이런 저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이라면 호화를 극한 결혼식·장례식은 규제되어야 마땅하다. 가정의례법이 제정되어 시행돼 오고 있는 것도 그런 배경에서 불가피하고,당사자들의 호화의식에 편승한 업자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 가정의례 업소의 각종 요금을 고시가격으로 묶은 조치도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그같은 조치에도 불구하고 업소들은 부대시설을 이용하라고 강요하는가 하면 값비싼 물품을 끼워 파는 등 부조리를 일삼아 보사부는 그 요금을 10월부터 다시 자율화 하기로 했다. 실효를 거둘 수 있으면 좋으련만 오히려 초호판 결혼식·장례식을 양성화 하는 결과가 되지는 않을는지 걱정이다.<정규웅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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