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림픽 유도「은」윤현|"아주 대회 땐 꼭「금」따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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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세상에는 과연「불운」이 존재하는 것일까.
매트 위에서의 불운이란 곧 부족한 실력의 또 다른 표현이라고 늘 생각해 왔지만 큰 대회 때마다 닥쳐오곤 하던 알 수 없는 힘은 지난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또다시 발현, 나를 정상문턱에서 밀쳐내고 말았다.
유도 남자60kg급 결승이 벌어진 지난3일 바르셀로나의 블라우그라나 체육관.
경기종료 51초를 남기고 쿠세이노프(EUN)에게 들어치기 효과를 빼앗긴 나는 자꾸 몸을 사리기만 하는 쿠세이노프를 잡으려 필사적으로 왼쪽 팔을 뻗었지만 이스라엘 탕과의 2회전· 경기도중 접질린 왼쪽 팔꿈치부분의 인대가 늘어난 탓으로 힘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금메달의 꿈을 안타까운 시간과 함께 흘려 보내고야 말았다.
8년의 대표경력에 스물 여섯이란 적지 않은 나이 때문에 이번 올림픽이 마지막이라고 스스로를 채찍질, 안간힘을 썼건만 월계관의 꿈은 그렇게 사라졌다.
그저 멍해져 분한 생각도 미쳐 느낄 수 없었다.
지난해 역시 바르셀로나에서 벌어진 세계선수권대회 결승에서 우세한 경기를 필치고도 일본의 고시노에게 뜻 모를 판정패를 당했던 악몽이 되살아난 까닭이다.
87년 서독오픈 우승을 시작으로 10여 개의 크고 작은 국제대회를 석권했지만 정작 욕심을 낸 세계선수권과 올림픽에선 번번이 매스컴에서 일컫는「불운」이 불청객처럼 찾아든 것이다.
불운을 이유로 부족한 실력을 감싸주는 여론의 따뜻함에 몸둘바를 몰랐고 이번 올림픽진출 티킷을 양보해준 쌍용양회 팀 후배 안효광(안행광)에게도 면목이 없었다.
『죄송합니다.』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말이었다.
그러나 열 개의 은메달보다 한 개의 금메달이 더 값지게 평가받는 현실에서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오기가 꿈틀거렸다.
귀국날인 지난12일 고향 삼천포에서 상경하신 어머니(천매심·62)는 김포공항으로 마중 나와『이제 좀 쉬어라』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이내 정든 쌍용양회 훈련장으로 달려가 매트에 몸을 내던졌다.
삼천포문선국교 6년 때 입문,15년간을 뒹굴어온 매트에 대한 미련을 떨칠 수가 없었다.
과연 세상에 불운이란 존재하는 것일까.
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나는 이 불운을 또 한번 시험해보려 한다. 체급을 현재의 60kg급에서 한 체급 올린 65kg급으로 재조정, 다시 한번 금메달에 도전할 생각인 것이다.
불운이란 부족한 실력의 또 다른 표현임을 기필코 입증, 나의 사전에서 불운이란 단어를 지워버리고야 말겠다.
올해는 또 그동안 올림픽준비로 미처 마치지 못한「유도기술 중 허벅다리후리기에 대한 운동학적분석」의 석사논문(국민대 대학원)도 끝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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