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재소<성대교수·한문학>우리문화 뿌리 찾을 좋은 기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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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과 중국이 드디어 국교를 수립했다. 두 나라의 이해 당사자인 북한과 대만의 완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전격적으로 국교를 정상화한 북경에는 경제적 문제가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현대가 경제전쟁 시대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 쪽의 입장에서 볼 때 경제적 실리에 못지 않은 문화적 의의가 있음을 간과할 수 없다.
한국과 중국은 동일한 한자문화권에 속하는 나라로서 수천 년 동안의 문화교류를 통해 서양세계와는 다른 문화적 동질성을 공유해왔다. 그러던 것이 일제 식민통치와 중국의 사회주의화, 6·25를 거치면서 양국의 교류는 완전히 단절되었다. 이 단절은 특히 우리나라 쪽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조 말까지 가장 큰 문화의 공급원이었던 중국과 일체의 교류가 단절됨으로써 서양문화가 일방적으로 침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던 것이다. 제국주의 시대와 그 이후 이 땅에 들어온 서양문화는 우리의 전통문화를 걷잡을 수없이 훼손시켰다. 한편 우리와 뿌리를 같이 하는 중국문화를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대만이었는데 대만은 우리의 문화적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서양문화의 일방적 수용에 대한 재검토와 반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중국과 문화적 교류의 길이 열렸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일이다. 중국은 우리와 이데올로기를 달리하는 사회주의국가임에도 불구하고 그 문화적 뿌리는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수천 년 동안의 문화적 전통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중국식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했기 때문에 그 문화적 속성과 인간의 정서는 여전히 동양적이다. 특히 전통문화에 관한 한 이데올로기의 색채가 거의 보이지 않는다. 중국에서 출판된 고전문학 관계 서적들을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중국과의 문화교류는 한문학의 거대한 뿌리, 역사적 자료의 교환, 공동연구, 고고학적 연구 등 다양할 것이다. 지금까지 적대관계로 인해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고 상호교류의 장이 열리지 못한 것은 우리문화의 발전을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중국학자나 문화단체와의 직접적인 교류 폭을 넓혀가면서 우리의 부족했던 점이 보충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활발해질 중국과의 문화교류에 있어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문화적 사대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한중관계는 과거와 같은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다. 우리가 중국과의 문화교류를 환영하는 것은 문화적 뿌리를 같이 하는 동아시아국가로서 새로운 동양문화 창조에 힘을 합치기 위함이다.
문화에는 나라마다 그 나름의 독자적인 개성이 있는데 확대해 말한다면 동양문화권과 서양문화권도 각자의문화적 개성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문화적 개성을 도외시하고 서양문화일변도로 흘러왔다.
그러나 지금은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 동양문화의 거대한 뿌리인 중국과의 적극적인 교류를 통해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줄 것은 주면서 우리의 체질과 정서에 맞는 새로운 문화의 틀을 만들 시기가 이제는 왔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한중수교는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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