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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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전중윤 삼양식품그룹회장(73)이 즐기는 기호 식은 널리 알려진 대로 라면이다.
요즘도 한집에 사는 두 아들 내외와1주일에 두세 번씩은 꼭 라면을 든다.
라면이 아니었더라면 필시 오늘날 14개 계열사를 거느린 식품재벌 삼양식품그룹이 없었을 터이기에 전 회장이 남달리 라면에 대해 애착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그가 점희를 넘도록 라면을 즐기는 것은 단순히 그룹의「1등 공신」을 가까이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그에겐 라면이 경영철학이자 삶의 철학이기도 하다.
61년 잘 되던 보험업에서 손을 훌훌 털고 식품회사를 세운 전 회장이 63년에 국내 처음으로 라면을 만들게 된 것은 당시 남대문시장에서 막노동하는 사람들이 이른바 5원짜리「꿀꿀이죽」을 먹기 위해 줄지어 서있는 것을 본 것이 계기가 됐다.
라면의 성공 이후에도 그는 오로지 식품사업 이외에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모 기업인 삼양식품에 이어 삼양유지사료·농수산·축산이 그렇고 삼양판지공업도 라면박스 만드는 회사다. 식품과 관련된 특허·의장 등 공업소유권만 3천여 건에 이른다.
첨단기술 못지않게 식량자급자족이 우리의 살길이라고 굳게믿는 그의 소신 때문이다.
그래서「의식주」라는 말을「식의주」로 고쳐야 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한다.
「라면철학」이 이러하니 그의 일상생활도 비싸야 고작 몇 백 원하는 라면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그의 집엔 여태껏 파출부를 둔 적이 없고 올해 예순 넷의 부인이 손수 밥짓고 라면을 끓여내고 있다.
또 전 회장 부부의 알뜰함은『궁상맞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빈 요구르트 병은 야유회 때 물 컵으로, 다 먹은 계란 판은 대관령 목장 닭 사육장에 보내지고 겨울에 두 내외만 있게 되면 여지없이 보일러를 끄고 전기난로를 켠다.
전 회장 집무실 책상 위의 고무판은 때가 잘 지지 않는 10년 넘은 고물이고 다 쓴 1백 원짜리 볼펜도심만 갈아 새로 쓴다고 측근들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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