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조금 금지」실효 거두려면(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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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체의 초중고교 찬조금·잡부금을 이번 신학기부터 없앤다는 교육부의 결정은 원칙적으로는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도 그다음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는 의문에 부닥친다.
선의의 순수 기부금은 교육청을 통해 받는다고 하지만 어느 학부형이 간접기부금을 얼마나 제대로 내놓을지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결국 찬조금 금지라는 원칙론적인 교육부의 지시는 교육현장의 문제를 아무런 보장이나 지원없이 해당 교육청이나 학교가 알아서 재정을 꾸려나가라는 무책임한 선언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특히 사립 중고등학교의 재정난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대학과도 달라 공교육에 속하는 중등학교의 사학재단에 수익성 사업을 벌여 학교운영비를 충당하라고 요구하기엔 재단의 힘이 너무나 빈약하다. 학생의 납입금으로 학교운영비를 충당할 수 밖에 없는 사학으로서는 결국 공립보다는 높은 육성회비를 징수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현행 평준화 교육체제에서 사립 중고등학교에 무작위로 진학할 수 밖에 없는 학생 입장에선 앞으로는 공립학교보다 월등히 높은 육성회비를 일괄적으로 내야 한다는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관행으로 묵인돼왔던 찬조금은 이런 여러 이유로 존속할 수 밖에 없는 교육계의 필요악적 존재였다.
금지 취지를 살리자면 장기적으로는 정부의 교육예산을 더 확충해야 한다. 유명무실한 사립학교 재단에 의존할 일이 아니다. 정부가 맡아서 할 중등교육을 지금껏 사학재단이 맡아 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대견한 일이라고 보고 교원봉급만이 아니라 학교운영경비도 정부가 지원하는 기본방향을 확립해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비 투자가 현재의 GNP대비 3.6%에서 국제적 평균 수준인 5% 정도로 확대되어야 한다.
기술교육이 어느 때 없이 화급하고,아직도 후진국 수준을 넘지 못하는 교육환경을 벗어나기 위해,또 빈사상태에 있는 사학재정을 정상화시키기 위해 교육투자를 장기계획에 따라 늘려야 한다.
그 다음 단기적 대응방안으로는 현재 운영중인 학부모 중심의 학교육성회를 건전한 방향으로 유도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일이다. 육성회가 치맛바람의 진원지라는 오명을 씻고 주민중심의 건전한 육성회로 기능하도록 재정립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굳이 교육청을 통한 실효성없는 기부금 기탁을 기대하기 보다는 육성회가 학교운영을 위한 모금창구가 되고 그 기금의 집행을 맡아 공정하고 공개적으로 집행한다면 그동안 찬조금을 둘러싼 잡음도 어느 정도 사라질 수 있다고 본다.
이 두가지의 기본적인 대응없이 무조건 찬조금 금지라는 지시는 찬조금의 음성화만 무성하게 하는 또 다른 부작용을 불러일으킬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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