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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론에 빼앗긴 남편(촛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0면

시한부 종말론에 빠진 남편때문에 집과 재산을 날리고 서울 목동아파트 친척집에 신세를 지고있는 백모씨(34·여)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눈앞이 캄캄하다.
Y대 신학과를 졸업한 백씨의 남편 권모씨(33)가 시한부 종말론에 빠져든 것은 무허가인 서울 역삼동 「한국상담훈련원」과 미 라엘대 한국분교에 다니면서였다.
경기도 일산의 D교회 전도사였던 권씨는 90년 11월부터 한학기 80만원의 등록금을 내고 이학교 설립자 이경훈씨(35·서울 역삼동)에게서 신학상담을 배우며 사람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미국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이씨는 신앙상담론 등을 가르치면서 개별상담을 통해 권씨 등 학생들에게 자신의 종말론교리를 교묘하게 주입했다는게 백씨의 설명.
이씨에게 매료돼 그토록 열심이던 전도사까지 그만둔 권씨는 집안일도 포기하고 학교에만 매달렸고 작년에는 부인 백씨명의 28평짜리 아파트까지 팔아 이씨에게 3천여만원을 바치기도 했다.
금년 1월 이씨가 스스로 메시아라며 『세상의 종말이 다가왔다』『나를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자 권씨 등 열성파들은 이씨의 말을 맹목적으로 따르며 직업까지 포기한채 「종말」만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급기야 『이스라엘에 가서 예언자 엘리아를 만나 종말을 맞이해야 한다』며 자신을 따를 것을 요구했고 총재산 4천5백여만원 모두를 처분한 권씨 등 30∼40대 열성파 20여명은 직업과 가족을 팽개치고 이씨를 따라 5월 이스라엘로 출발했다.
이씨는 이스라엘에서 예언자를 기다린다며 권씨 등을 집단셋집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권씨 등의 돈으로 40여일간 최고급 호텔에서 메시아인양 호화판 생활을 했다는 것이다.
종말로 예정됐던 5월15일,그러나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씨는 『종말이 연기됐다』며 사람들의 의심을 무마하고 스페인 등 관광지를 유유히 유람하다 19일 귀국,백씨 등의 진정으로 경찰에 사기혐의로 구속됐다.
이씨는 경찰에서 『종말은 연기됐을뿐 사기의 의도는 없었다』며 끝내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죄인을 구속한다고 파괴된 가정을 되찾을 수 있나요. 돌아선 남편의 마음을 누가 돌이킬 수 있겠습니까.』
백씨는 아직도 종말만을 기다리는 남편을 안타깝게 쳐다봤다.<윤석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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