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3부] 가을(61)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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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그림=김태헌

사정은 막딸이 아줌마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퇴근 무렵이 되면 아저씨에게 전화가 오는 모양인데 아예 중계 방송을 하는 거 같았다.

"응, 지금 위녕이 들어와 밥을 먹어요. 된장찌개에 조기를 튀겼어요. 애 엄마는 오늘 좀 늦는다니까, 조금 있다가 서저마 아줌마가 오면 그때 가야 해요. 지금 설거지하려고…, 알았어요. 한 삼십분 후쯤 나갈게요."

단언컨대 화상 전화기가 나오면 막딸이 아줌마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이 되지 않을까 싶다.

두 동생은 각각 학원에 가고 오랜만에 서저마 아줌마와 나는 밥을 먹고 편안히 앉아 포도를 먹었다. 별로 할 말도 없고 틀어놓은 텔레비전 뉴스에서는 그저 그런 소식만 알리고 있어서 내가 무심히 물었다.

"아줌마는 결혼할 생각이 이제 아예 없으신 거예요?"

그러자 서저마 아줌마는 얼굴이 팍, 굳어지더니 대답했다.

"위녕, 내가 그러잖아도 너의 엄마에게도 다시 한번 당부를 했다마는 절대로 나 위해서 남자가 생기게 기도해서는 안 된다. 내가 너희 엄마에게도 다시 한번 신신당부를 했다마는 난 절대로 외갈매기 산악회 같은 데는 가입하지 않을 거야. 난, 너무 바빠. 할 일이 너무 많아…."

이게 언제 적 이야긴가 싶어 곰곰 생각해보니, 서저마 아줌마가 그 나나 무스쿠리 같은 여자를 시골집에 데리고 와 소동이 일어났던 날, 엄마가 한 이야기를 서저마 아줌마가 다시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다 잊고 있었는데 아줌마 혼자 그 이야기를 기억하는 것 같아 웃음이 나왔지만 그러면 안 될 거 같아 나는 큰기침을 좀 했다. 그리고 나는 내 품에 안긴 코코의 등만 쓸어내렸다. 그것도 모르고 서저마 아줌마의 말은 봇물이 터진 듯 계속됐다.

"내가 산에 갈 사람이 얼마나 많다고, 내가… 산에 갈 사람 없어서 너희 집에 오는 게 아니에요. 그러니 너도 행여 날 위해서 좋은 남자 만나서 결혼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면 안 된다. 알았지?"

그때 코코가 무엇을 본 것처럼 내 품에서 뛰어내리지 않았다면 나는 아마 배를 잡고 웃었을지도 모르겠다. 서저마 아줌마는 들고 있던 영어 책을 무릎에 내려놓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물론 나도 가끔은 네 엄마가 부러워. 대학 때부터 네 엄마를 가장 가까운 데서부터 봐온 사람으로서 어떤 때는 네 엄마처럼 되지 않아서 다행이다 생각한 때도 많았지. 물론 그랬어. 섣불리 결혼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생각 안 한 건 아니야. 그런데… 참 이상하다. 가을이 돼서 그런가, 요즘은 그것도 나쁘지 않았겠다, 생각이 드는 거야. 사랑하고 결혼하고 너희 같은 아이들 낳고 울고 웃고, 그리고 혹여 나쁜 결과가 오더라도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보다는 낫지 않았을까…. 아무래도 가을을 타는 모양이야"

"이제라도 늦지 않으셨잖아요?"

내가 묻자 서저마 아줌마는 그제야 생각에서 깨어난 듯 두 손을 내저었다.

"내가 네 엄마 나이만 되었더라도, 어떻게 해보았겠지. 근데 이젠 너무 늦었어"

서저마 아줌마와 엄마는 세 살 차이라고 했다. 엄마 말에 따르면 서저마 아줌마는 이십 년 전부터 엄마만 보면 "내가 네 나이만 되었어도"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했다. 엄마는 단언했다.

"내가 삼 년 먼저 다시 태어나기 전까지, 서저마 아줌마를 설득할 방법은 없어!"

그때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더니 막내 제제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아악! 누나! 이게 뭐야?"

달려가보니 제제의 양말에 걸쭉한 오물이 묻어 있었다.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아 내 방으로 갔다. 코코가 미처 모래 상자에 오르지도 못하고 끈적거리는 액체를 엉덩이에 묻힌 채 서있었다. 야단을 치려고 코코의 뒷덜미를 잡아드는 순간 코코가 내 손 안에 먹은 것을 토했다. 거의 소화가 되지 않은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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