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사실로 드러나는 경찰 은폐 의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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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보복 폭행 사건이 보도되기 전부터 남대문 경찰서 수사간부 두 명이 이 사건에 깊게 관여한 조폭 두목을 만났다고 한다. 김 회장 측의 지시로 폭력배를 동원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이 두목은 언론에 알려진 후 해외로 도피했다. 수사간부들이 김 회장 측과 짜고 사건을 은폐나 축소하려 한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경찰은 처음부터 김 회장 측을 감싸고 돌았다는 의혹을 받았는데, 안타깝게 사실로 드러나고 있다.

경찰의 행동에는 처음부터 수상한 구석이 많았다. 서울 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사건 직후부터 2주 이상 자세히 조사했으나 서울청 수뇌부는 첩보 수준이라고 묵살하고는 수사 능력이 떨어지는 남대문서로 이관했다. 남대문 서장은 이미 고교 선배이자, 한화그룹 고문인 최기문 전 경찰청장으로부터 수사 관련 전화를 받은 상태였다. 그 후 경찰은 쉬쉬하다가 언론 보도 후 청와대가 엄정 수사하라고 지시하자 난리법석을 피웠지만 증거를 못 찾아 애를 먹었다.

규명해야 할 의혹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서울청 수뇌부는 왜 광역수사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대문서로 이관시켰는지, 이택순 경찰청장은 언론 보도를 통해 알았다는데 사실인지, 그렇다면 서울청 수뇌부는 왜 이 청장에게 보고하지 않았는지, 최 전 청장이 압력을 넣었는지, 그 밖의 다른 압력은 없었는지 등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난달 하순 남대문서 수사간부들과 조폭 두목의 접촉 사실을 경찰에 알려 줬다는데, 수사간부들은 교체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의아스럽지 않은가.

이번 사건은 언론에 보도되지 않았으면 흐지부지될 뻔했다. 경찰청은 늑장 수사 이유와 외압 여부를 감찰하고 있다고 한다. 만약 남대문서 수사간부들을 문책하는 선에서 적당히 막으려 한다면 경찰의 신뢰는 심각하게 추락할 것이 뻔하다. 깃털이 아니라 몸통을 철저히 조사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리고 뼈를 깎는 반성을 통해 새로운 경찰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경찰의 수사권 독립 요구에 귀 기울일 국민은 아무도 없다.

[알려왔습니다]

행정자치부는 본지 5월 24일자 사설 '사실로 드러나는 경찰 은폐 의혹' 중 "박명재 행정자치부 장관은 지난달 하순 남대문서 수사간부들과 조폭 두목의 접촉 사실을 경찰에 알려줬다"는 내용에 대해 "박 장관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