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로 판단하는 시위진압 방식/김종혁 사회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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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지난해 명지대생 강경대군과 성대생 김귀정양이 시위진압 과정에서 사망한 사고가 났을때 경찰간부들의 변명은 한결같았다.
과잉진압을 엄금하고 있지만 돌멩이와 화염병 세례를 받다보면 전경들이 흥분,충돌이 불가피하며 그래도 「시민들의 안녕과 질서」를 위해 진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12일부터 시작된 범민족대회와 경찰의 오락가락 하는 진압방식을 지켜보노라면 과연 경찰이 시민들을 위해 진압을 하며 흥분한 전경들이 문제인지 의구심이 앞선다.
경찰은 『신임 수뇌부가 경비통이어서 진압을 제대로 못하면 벼락이 떨어질 것』이라는 일선 직원들 사이의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처음부터 무지막지한 진압을 펼쳐댔다.
시위대가 화염병·돌을 준비했는지의 여부나 최루탄 발사가 오히려 시민통행에 불편을 주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려는 커녕 학생들이 모이기만 하면 무조건 최루탄을 난사하고 폭력을 휘둘러댔다.
11일에는 서울역광장에 모여있던 학생들을 포위해 토끼몰이를 해대다 심지어 역사안까지 뒤쫓아가 수십발의 사과탄을 던져댔고 이에 항의하는 시민들에게는 『빨갱이 새끼들』이라는 폭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은 과잉진압이 다시 논란이 될 기미이자 하루 뒤인 13일 태도를 바꿨다.
청량리역에 수천명의 학생들이 모이고 미아리에서 삼선교까지 도로점거 가두행진이 벌어졌지만 최루탄은 커녕 아무 제지도 하지 않아 학생들도 의아해할 정도였다.
명동의 백화점 앞에서 전경을 지휘하던 한 중대장은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주지 않도록 전경들을 눈에 띄지 않게 건물 뒤편으로 이동시켰다』고 말했다.
경찰 지휘부에서 『절대로 공세위주의 진압을 하지말라』고 지시를 내린데 따른 것이다.
하루만에 정반대로 바뀐 경찰의 진압방식은 결국 경찰이 소신보다는 상부의 눈치보기에 급급하며 과잉진압의 책임은 전경이 아니라 지휘관들의 의식에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공공의 안녕과 질서」라는 엄정한 기준에 따른 임무수행이지,경찰책임자의 성향이나 여론에 따라 이리저리 변하는 경찰이 아니란 점을 이제는 알아야 할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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