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실 승무원 989대 1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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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9 대 1.

21일 발표된 제주항공 객실 여승무원 신입사원 경쟁률이다. 남녀 5명 모집에 4947명이 몰렸다. 경력직은 4명 모집에 78명이 지원해 19.5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올 2월 대학을 졸업한 유한애(24.여)씨는 승무원이 되기 위해 지난해 하반기부터 다섯 차례 항공사 문을 두드린 끝에 이번에 합격했다. 모두 유씨와 같은 행운을 거머쥐는 것은 아니다. 자신을 '백조'(여성 구직자)라고 밝힌 박모(24.여)씨는 지난 일 년간 항공사에 10차례 원서를 넣었지만 계속 고배를 마셨다. 요즘 박씨는 평일에는 영어 공부를 하면서 승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주말에는 판촉 도우미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박씨는 "처음에는 시험을 볼 때마다 떨어지는 내 처지가 속상해 눈물도 많이 흘렸다"며 "올 연말까지만 시도해 보고 포기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제주항공뿐 아니라 한 해 서너 차례 있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신입 승무원 채용 때도 보통 50~100 대 1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제주항공에 구직자들이 대거 몰린 것은 승무원 직업이 인기도 있지만 취업난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현실을 반영한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승무원 채용 나이 제한을 시정하라고 권고함에 따라 올해부터 항공사들이 나이 제한을 없앤 것도 경쟁률을 높인 요인이다. 승무원 양성학원인 ANC의 김종욱 기획홍보팀장은 "취업이 어려운 상황에서 초봉으로 연봉 2800만원을 받을 수 있고 멋있어 보인다는 점 때문에 승무원 지원자들이 많다"고 말했다.

대학 졸업자들의 취업난은 승무원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올해 대학을 졸업한 한 네티즌은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을 나왔는데, 솔직히 이 정도로 취직하지 못하고 쩔쩔맬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답답한 마음에 스트레스만 받아 불과 일 년도 안 된 사이에 몸무게가 12㎏이나 빠졌다"고 취업포털 인크루트 게시판에 썼다. 석사 출신 30세 '백조'라는 한 여성 구직자는 "지난 4개월 동안 수도 없이 지원했지만 면접은 겨우 세 군데 봤다"며 "나이 때문에 더 조급해져 차라리 대학원 졸업을 숨기고 원서를 내볼까 생각 중"이라고 밝혔다. 경북 포항의 24세 대졸 여성 구직자는 "이곳저곳 이력서를 뿌리고 다니는데 연락 오는 곳이 없어 착잡하다"며 "차라리 생산직에 가볼까 고려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인크루트가 지난해 12월 465개 상장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6년 신입사원 입사 경쟁률은 평균 56.2 대 1이었다. 2005년(48.6 대 1)보다 입사 경쟁이 더 치열해졌다. 인크루트 이광석 대표는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란 신조어가 나올 정도로 청년실업이 심각해지면서 많은 청년이 대학 졸업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며 "대학 졸업자들은 해마다 증가하는데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일자리는 줄어들고 있어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괜찮은 일자리'가 해마다 감소하고 있기 때문에 체감 취업난은 이보다 더 심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현영.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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