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값 부풀리기 힘들어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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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민간 건설업체들의 '땅값 부풀리기'가 수그러들 전망이다. 9월부터 분양가 상한제를 시행하면서 '짠물 평가'로 정평이 난 한국감정원이 택지비 감정에 '필수 기관'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민간 감정평가법인들은 "공기업인 한국감정원에 정부가 특혜를 준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감정원이 해결사?=수도권에 짓는 아파트는 분양가에서 차지하는 땅값의 비중이 40~70%에 이른다. 분양가 상한제로 집값을 잡으려는 정부 입장에선 무엇보다 땅값을 낮추는 게 급선무일 수밖에 없다. 고민하던 건설교통부가 선택한 카드가 바로 공기업인 한국감정원이다.

건교부는 최근 주택법 시행령에 한국감정원을 땅값 평가기관으로 꼭 지정할 수밖에 없는 조항을 끼워넣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우수 감정평가법인 두 곳에 민간 택지의 감정가를 의뢰하되 이 중 한 개는 공동주택의 조사.산정에 대해 전국적인 업무수행 능력을 갖춘 자에게 반드시 의뢰하도록 한 것. 이 같은 조건에 부합되는 감정평가기관은 사실상 한국감정원밖에 없다.

특혜 시비를 무릅쓰고 건교부가 이런 강수를 둔 것은 '땅 보상비 상승→택지비 상승→분양가 상승'으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건교부와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03년 1월 '토지소유자 추천제' 이후 땅 주인이 한국감정원을 평가기관으로 추천한 적은 전무했다. 추천제는 땅값 산정에 주민 의사를 반영한다는 취지에서 도입돼 사업시행자가 2개 기관, 땅 주인이 1개 기관을 추천한 뒤 이들 3개 기관의 평가 액수를 평균해 땅값을 정한다. 땅 주인으로선 땅값을 짜게 평가하는 한국감정원을 추천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심지어 SH공사가 시행한 은평 뉴타운, 대한주택공사의 아산 신도시 등에선 시행자 측 평가법인으로 한국감정원이 추천됐다가 주민 반대로 결국엔 빠졌다.

한국감정원 관계자는 "공기업의 특성상 평가액이 민간보다 낮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보니 우리 회사가 환영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심지어 주민과의 마찰을 우려해 공공기관마저 우리를 제외하곤 한다"고 말했다.

◆민간 감정평가기관 반발=한 민간감정법인 관계자는 "민간 업체 대표들로 구성된 전국 감정평가법인 대표자 협의회를 중심으로 건교부를 비롯한 각 부처에 이의 신청 중"이라며 "입법 예고기간(다음달 7일)까지 별 성과가 없을 경우 평가사들이 시위도 벌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민간 법인들은 ▶전체 감정평가사의 10%밖에 안 되는 한국감정원이 민간 택지 감정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며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정부가 특정 업체를 후원하는 것은 불공정 거래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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