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봐야 할 평화은행/심상복 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비판을 함에 있어서 다소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할 분야가 있다. 농촌·중소기업·북한문제 등이 그것이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푸대접을 받아온 곳이다.
자본가의 도덕의식에 대한 시비가 자주 이는 풍토에선 근로자 문제도 그중 하나다. 사회 구성원 다수가 근로자이고 아직도 자신의 몫을 다 챙기지 못하는 현장 근로자들이 여전히 존재하는 현실탓이다. 때문에 정부가 근로자를 위해 벌이겠다는 어떤 일에 제동이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게 진짜로 근로자를 위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평화은행의 경우는 좀 다르다. 작년 3월 정부가 평화은행 설립가능성을 (처음 비췄을 때만해도 관계전문가들은)그저 단순한 검토사항으로만 알았다. 그러나 하반기부터 이 일이 설립을 전제로 추진되자 쏟아져 나온 우려의 소리는 은행설립 내인가가 떨어진지 반년이 되도록 이어지고 있다.
1천만 근로자를 상대로 금융복지를 실천하겠다는 것이 설립취지인데 왜 이같은 걱정을 낳는 것일까. 근로자들의 내집마련이나 경제적 지위를 높이는데 도움을 주겠다는 것인데 무엇이 문제시 되는가.
한마디로 그것은 은행하나를 신설하는 정도로 근로자 금융복지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라는 판단때문이다. 다시 말해 지금 근로자들이 은행돈을 쓰기 어려운 것은 은행수가 적어서가 아니라는 얘기다. 사실 정부가 진실로 근로자 금융지원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면(물론 그것은 정책선택의 문제지만)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책은행인 국민은행이나 주택은행은 물론 「말 잘듣는」시중은행을 통해서도 그 뜻을 충분히 펼 수 있는 것이다.
무한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금융시장에 신생은행을 이제 출범시켜 설립취지를 제대로 못살리고 자칫 부실화되는 상황을 걱정하는 것은 기자만의 기우일까. 부실화되지 않으려면 정부에 기대는 일이 잦을 것이라는 예측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은행창립작업의 시작이자 가장 중요한 대목인 자본금공모가 인기를 끌지 못하는 것이 이미 그같은 우려를 가시화하고 있다. 근로자가 주인이라는 은행에 노동단체와 근로자들이 별 관심을 갖고 있지 않다. 대기업들은 몇차례에 걸친 정부종용에 겨우 「굴복」한 정도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출자를 받아도 시원치 않을 중소기업은행 등 3개 국책은행만 애꿎게 배정된 출자분을 다 채웠다.
「돈 되는」곳으로 몰리게 마련인 돈의 속성으로 볼때 왜 자본금 공모가 이렇게 안되는지 정책당국자들은 지금이라도 곰곰 따져봐야 한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