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노분자 기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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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27면

나노분자헬리콥터, 나노분자기어, 나노분자스위치, 나노분자소자…. 분자로 만든 기계가 과연 가능할까. 미래 과학소설에서나 나올 내용 같지만 이젠 반드시 꿈같은 얘기만은 아니다. 나노기술이 발전, 분자 하나하나를 조절해 특수 목적의 기계를 만든다는 게 가능해지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초미니 구조물인 ‘나노분자기계’는 나노미터(㎚ㆍ10억분의 1m) 수준에 해당하는 분자나 원자를 직접 제어해 만들어진다. 기존 기계장치와는 구조도 전혀 다르고, 작동방식ㆍ에너지원 역시 다르다.

나노구조체를 만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커다란 물질의 크기를 원하는 수준까지 줄여가는 하향식(top-down) 기술과, 개개의 원자나 분자를 벽돌처럼 쌓아 만드는 상향식(bottom-up) 기술이 있다. ‘나노분자기계’는 상향식 기술로 만들어진다.

열역학 법칙처럼 ‘무질서도(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게 자연계의 순리인데 어떻게 그 작은 분자나 원자가 분리되지 않고 조립될까? 그건 원자ㆍ분자 나노입자가 자발적으로 연결돼 구조물을 만드는 ‘자기조립’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자기조립을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원자 간의 자연적 결합력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정확한 원리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사실 나노분자기계는 이미 우리 몸 속에 있다. 고등동물의 세포는 ‘단백질 제조회사’고 세포 안의 ‘리포좀’이라는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세포 속에서 일어나는 분자활동은 대부분 나노 단위 수준이다. 리포좀은 세포 안에서 유전정보에 따라 20여 개 종류의 아미노산(원료)으로 단백질(제품)을 만드는 생산조립라인 역할을 한다. 생명체는 이처럼 스스로 분자를 결합해 특정한 구조의 분자기계를 만들어내는 능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현대 과학은 리포좀 같은 ‘자연 나노기계’를 인위적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나노분자기계가 움직이는 방식은 다른 기계와 완전히 다르다. 연료에 해당하는 ATP(아데노신삼인산)의 가수분해에 의해 얻은 에너지를 통해 돌아간다. 예를 들어 나노 단위에서 헬리콥터처럼 작동하는 기계는 ATP의 가수분해로 얻은 자유에너지를 회전에너지로 전환시키는 효소 단백질(지름 8㎚, 높이 14㎚)을 일종의 생체 회전모터로 활용해 프로펠러를 움직인다. 또 두 개의 구조물에 분자로 요철 부위를 만들어 서로 맞물려서 돌아가는 나노분자기어는 수소ㆍ탄소ㆍ실리콘ㆍ질소ㆍ인산ㆍ산소ㆍ황 분자 등으로 만들어진다. 현재 특정 전압을 가해 기어를 구동시키려는 실험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원하는 양의 힘과 운동을 조절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럼 인류는 왜 나노분자기계를 만들려 하는 걸까. 그것은 모든 분자물질들을 나노 수준에서 자유롭게 조립하고 조작할 수 있다면 인간이 개발한 모든 기계를 소형화ㆍ집적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러한 나노분자기계는 의학분야와 전자분야의 새로운 장을 열게 될 것이다. 신체를 돌아다니며 나노집게로 특정 부위를 수술할 수 있는 수술로봇, 특정 약물을 질병 부위에 전달하는 약물전달기계, 신문 800만 쪽 이상의 거대한 정보를 분자 하나에 저장할 수 있는 분자소자 등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현재 나노분자기계 연구는 초보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과거 신의 영역이던 분자조작 기술이 이미 인간의 영역에 편입됐듯이 언젠가는 꿈의 기계가 탄생할 것이다. 우리가 향후 나노분자기술에 주목해야 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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