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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 갇힌 그들은 우리의 자화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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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호 08면

고등학생 시절, 여자친구와 과천 동물원에 갔던 적이 있었다. 어림잡아 20년 전. 휴일이었다. 피부의 여린 점막들이 송두리째 햇볕에 까발려지던 5월이었다. 분홍색 솜사탕과 색색의 풍선들이 간헐적으로 기억의 표면에 떠오른다. 제 코로 물을 퍼올려 등목을 하던 코끼리 앞에서였는지, 나른하게 털이나 솎고 있던 암사자 앞에서였는지 정확하진 않다. 하찮은 말다툼 끝에 여자친구가 휑하니 돌아섰다. 뭐라 발작적으로 소리를 쳤던 것 같기도 하다. 여자친구는 뒤도 안 돌아보고 잰걸음으로 사라져갔다.

新문학기행-동물원

주위의 이목이 온통 나를 향하는 듯해 등골이 화들짝 타올랐다. 그 순간 한 발짝도 떼지 못했던 암담함이 아직도 선연하다. 여자친구는 순식간에 수많은 시선 속으로 사라졌다. 그때 문득 저 아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일 거라는 황망한 확신이 들었다. 그건 진공과도 비슷한 상태였다. 난 사람들의 시선 속에 텅 비워져버린 모종의 공기와도 같았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아버릴 것 같은 두 다리를 간신히 버텨 가까스로 자리를 떴다. 도대체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일본원숭이를 구경하며 함께 낄낄거리던 10여 분 전의 상황이 악몽처럼 떠올랐다. 순식간에 내가 원숭이보다도 불쌍하고 우스꽝스러운 존재가 된 듯싶었다. 그 순간 인간의 행복이나 정념 같은 게 ‘찰나의 착각’에 불과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과장일까. 여하간 우주의 전체적인 회로가 내가 원하는 방향과는 정반대로 회전하며 이상하게 삐걱거리는 것 같았다.

단지 여자친구가 화를 내며 사라졌을 뿐인데 세상은 돌변해 있었다. 표범이 으르렁거리는 소리와 공작의 우아한 깃털들이 뒤죽박죽으로 뒤섞였다. 감각은 그야말로 자중지란의 미로 속에서 제멋대로 흔들리고 있었다. 뭔가를 다급하게 찾고 있었던 것 같긴 하나 그게 꼭 사라진 여자친구만은 아니었다는 생각도 든다.

고독하고 고립된 동물, 인간

희한한 건 한동안 그렇게 헤매고 다니다 보니 수없이 부딪쳤던 그 많은 사람들에게서 그 어떤 실물감도 느낄 수 없었다는 사실이다. 주마간산으로 훑어보던 동물들의 어떤 동작이나 소리ㆍ냄새 등은 여전히 선연하지만 그날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내 기억 속에서 고스란히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이후로 ‘고독’이란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나는 그때의 동물원 풍경을 떠올리게 되었다.

배수아의 『동물원 킨트』(2002)를 나는 짐짓 동물원의 짐승들 구경하듯 건성건성 읽었다. 그 소설에 진짜 동물원은 등장하지 않는다. 단지 자신만의 동물원이 어딘가 있을 거라고 믿는 기묘한 화자가 등장할 뿐이다. 화자는 남성도 여성도 아니다. 그러고 보니 어쩌면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 점점 시력을 잃어가는 가운데 화자는 하마를 만난다. 그 하마는 피어싱을 했고 머리칼은 뻗쳤으며 늘 쌍둥이가 타고 있는 유모차를 끌고 다닌다. 하마라 부르는 이유는 단지 이름을 모르기 때문이다.

동물원을 찾는 아이(킨트는 독일어로 ‘아이’를 뜻한다)는 세상 모든 존재를 동물의 이름으로 부른다. 그러면서 하마와 대화하고 엽서도 보낸다. 시력을 완전히 잃었을 때 아이는 하마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발소리를 듣는다. 하나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유령처럼 나타났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소설. 동물원은 영원히 나타나지 않는다. 마치 동물원에서 사라진 여자친구가 끝끝내 나타나지 않았듯.

건성건성 읽었다고 했지만, 이 소설은 어떤 몰입을 요구하거나 깊은 생각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시선의 표면에 떠오르는 어떤 형상들에 대한 인상만 훑으며 각자가 떠올리는 하마 또는 동물원에 대한 심상을 재가공하면 될 뿐이다. 그래서 이 소설은 억압적이지 않다. 말 그대로 동물원의 짐승들을 구경하듯 전체를 두루 훑고 가볍게 빠져나오면 그만이다.

배수아는 “고립이란 반드시 혼자 지낸다거나 배타적인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반드시 고립되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 글은 이런 식으로 고립된 정신의 한 종류에 관한 것이다”라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모종의 고립과 세상으로부터의 소외감이 달짝지근하게 감겨올 때 사람들은 동물원을 찾는다. 이때 동물원은 세상 자체에 대한 은밀한 환유이자 정밀한 조감도다.

우리에 갇힌 짐승들은 개인의 고립을 외연화하면서 인간의 목줄을 쥐락펴락하는 욕망의 사슬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동물원의 짐승들이 외로워 보이는 건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마음이 그러한 것이다. 또 짐승들의 재롱이 귀엽게 여겨지는 건 세상의 엄연한 질서체계에 대해 무지한 채 스스로를 드러내는 천진함에 위안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세상의 모든 위락시설은 바로 그러한 가공의 편의 속에서 자신의 현실을 남의 것인 양 스스로부터 떼어놓고 바라보게 만드는 허위의 체계다. 그래서 동물원에서 보고 나오는 건 수많은 짐승의 생태계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길고 긴 그림자뿐이다. 그것은 늘 먼지처럼 부유한다. 일상에 늘 떠돌지만 새삼 눈에 잡히거나 만져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그것은 환상의 형태로 떠돌다가 부지불식간에 사라지는 우리의 현재다.

거대한 사육과 훈육 체계, 세상

나는 내일도 기린의 목처럼 부드럽게 휘어졌다.
너는 모레도 하마의 입처럼 무거워졌다.
우리는 삼십 년 후에도 가득한 먼지처럼
천천히 이동하였다.
- 이장욱, ‘먼지처럼’ 부분
 
배수아의 동물원이 오랜 외국생활로 인한 고립감에서 그려낸 가상의 지도라면, 현재 한국의 시인들은 삶의 표층에서 떠오르는 스스로의 이형(異形)들에 사로잡힌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 동물원은 과천이나 용인에 존재하는 특수한 공간이 아니다. 크게 말해 그들을 사로잡는 건 세상 전반을 지배하는 거대한 사육과 훈육의 체계다.

지난 시절, 정치체계나 이념들이 거대한 고딕 문자의 중압감으로 사람을 억압했다. 그래서 시인들의 발성이 그만큼 격렬하고 핏대가 또렷하게 살아있었다. 반면 최근 시인들은 한층 미시적으로 분할된 시공 속에서 현실을 허구화하는 데 주력한다. 그들에게 현실은 거대하게 시스템화된 가공의 동물원이나 놀이동산과도 같다.

거짓과 진실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현실과 허구의 경계는 더 이상 무의미하다. ‘우리는 무엇이다’라는 식의 투철한 정언명령(定言命令)들이 선험적으로 씌어져 있을 경우, 모든 언술은 곧바로 억압이 된다는 걸 우리는 오랫동안 듣고 보았다. 개인의 감정이나 사사로운 주제는 씌어지는 순간 사라지는 어떤 환영들과도 같다. 마치 동물원의 사자가 사자 자체의 야생성이나 번식력을 거세당했듯 현실은 현실이라는 껍데기만 걸친 가공의 공간이다. 그곳에서 사라진 무엇을 찾는다는 건 넓디넓은 동물원에서 기린과 하마에게 무시로 옮아가는 우리의 얄팍한 시선을 뒤집어 자기 자신을 본다는 걸 뜻한다.

동물원의 복잡하고도 분명한 이동경로 중간중간에서 환영처럼 등장하는 나 자신. 동물원은 분명 동물들의 낙원이 아닌 사람들의 요지경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돈다면
그건 사라지는 놀이지만
사람들은 언제라도 중간부터
시작된다
-이근화, ‘칸트의 동물원’ 부분
 
이 알쏭달쏭한 숨바꼭질 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고’ 도는 우리의 삶은 여전히 동물원에서 사라져버린 무언가를 찾고 있다. 그 사슬을 끊고 불현듯 튀어나와 게임판을 처음부터 다시 돌리는 자, 그는 누구일까. 20년 전에 동물원에서 사라져버린 여자친구일까. 아니면 철제 우리를 뚫고 한달음에 내달려 사람들의 일상에 공포를 주입하는 가련한 사자 새끼일까. 동물원의 한복판에서 동물원을 바라보니 동물원이 너무 멀다. 기린은 보면 볼수록 정말 가짜 같다. 당신이 바라보는 동물은 지금 당신의 어떤 마음을 시연(試演)하고 있는가. 이 지구가 이미 거대한 동물원이라면 저 짐승들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이미 지구 밖에 떠 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손에 잡히지 않는 ‘먼지처럼’.
 
횡단보도를 건너다 옛사랑을 마주친 호랑이
땀을 뻘뻘 흘리며 버스를 타는 북극곰
마트에 장 보러 가는 고양이
리어카를 끌고 가는 노새
자전거를 타고 가는 얼룩말
택시를 잡아타는 낙타
여자를 힐끗대며 신문을 읽는 박쥐
담배를 피며 전화를 거는 물소
돌아선 펭귄

오래도록 하늘을 쳐다보다
눈물을 쓱 닦고
다시 걸어가는 기린

의자에 앉아 창살 밖 거리를 내다보다
낮잠 자는 인간
- 정영, ‘지구 동물원’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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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씨는 시집 『처형극장』과 문화비평집 『나쁜 취향』 등을 냈으며, 록밴드 ‘히스테리 채널’의 리드보컬로 활약하는 전방위 예술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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