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말린 정조준…18세 손끝이 이룬 기적 드라마 금 봇물 "신호탄" 여갑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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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바르셀로나=특별취재단
올해 18세의 여고생 총잡이 여갑순(여갑순·서울체고 3)이 예상을 뒤엎고 불가리아의 세계적 명사수 베셀라 레체바를 제치고 우승한 것은 한편의 극적인 드라마였다.
더욱이 무명의 여갑순이 백전노장인 레체바에게 역전승을 거둔 쾌거여서 세계 사격계에 충격을 주기에 충분했다.
45명이 출전한 본선에서 여갑순은 특유의 두둑한 배짱으로 경기를 이끌며 내로라하는 경쟁자들과 한치의 양보없는 접전을 펼쳤다.
여갑순은 이날 40발을 쏘는 본선에서 3백96점을 마크하며 레체바와 동점을 이뤘으나 4시리즈(마지막 10발)에서 점수가 적어 시리즈차로 2위로 8명이 겨루는 결선에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레체바의 금메달은 확정된 것처럼 보였다.
레체바는 서울 올림픽에 출전, 여자 스탠더드 소총 3자세에서 은메달을 획득하고 공기소총에서는 등외로 밀려났지만 이 종목에서 한때 세계 최고 기록을 보유한 경험이 있는 노련한 선수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10발을 쏘는 결선은 축구의 승부차기와 비슷해 한발한발 쏠 때마다 등위가 바뀌기 일쑤다.
그래서 경기경험이 풍부한 레체바가 서울 올림픽의 치욕을 씻고 금메달을 목에 걸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한국의 어린선수 여갑순은 조금의 동요도 없이 한발한발 격발 시키며 2발째 10.3을 명중시켜 10.0점에 그친 레체바를 합계에서 0.2점 앞서나갔다.
3발째 레체바가 9.0점을 기록하며 주춤하는 사이 10.6점을 명중시키면서 승리의 여신은 여에게 미소지었다.
결선 10발을 모두 쏜 뒤 전광판에 아로새겨진 여갑순의 점수는 4백98.2점, 레체바는 4백95.3점.
2.9점차로 올림픽 첫번째 금메달을 확정짓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 사격연맹 회장이 내놔 >
○…「겁없는 아이」 여갑순은 바르셀로나 올림픽 첫 금메달을 기록하는 영광과 함께 돈방석에 앉게됐다.
여는 이번 금메달 획득으로 장진호(장진호) 사격연맹 회장이 내건 포상금 5천만원을 한꺼번에 받게됐으며 매월 60만원의 연금까지 받아 어린 선수로는 만져보기 힘든 거액을 손에 쥐게됐다.

< 레체바를 누르다니 >
○…여갑순이 대회 첫 금메달읕 따내자 세계 언론은 『전세계를 경악시킨 충격』이라며 크게 보도.
AFP통신은 여가 세계 선수권자인 베셀라 레체바(불가리아)와 치열한 경합끌에 레체바를 누르고 금메달을 때낸 것은 『세계 사격계를 깜짝 놀라게 한 이변』이라며 여를「신기(신기)의 명사수」라고 소개.

< 인상적인 빨간모자>
○…여는 이날 빨간색 야구모자에 「KOR」스티커를 붙이고 출전.
육중한 사격복 차림에 강한 색깔의 모자를 쓴 여는 좌우에 있는 레체바나 체르카소바(EUN)의 체구에 턱없이 처졌지만 안정된 스탠스와 정확한 격발 타이밍으로 초년병답지 않게 경기를 운영한 것이 결정적인 금메달 획득의 기틀이 됐다고-.

< 물을 천5백cc 마셔>
○…여갑순은 경기 종료 후 도핑 테스트를 위해 검사실에 들어갔으나 소변이 나오지 않아 약 3시간 동안을 기다려야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이날 10시30분쯤 검사실에 들어간 여는 5백cc짜리 물을 3통이나 먹고서도 3시간이나 기다린 것.
검사실을 나온 여갑순은 『경기할 때는 몰랐는데 도핑검사를 어렵게 치른걸 보니 무척 긴장했었던 모양』이라며 쓴웃음.

< 본선 결선 배점달라 >
○…공기소총의 점수는 본선과 결선에 따라 배점이 다르다.
본선은 지름 0.5mm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정확도에 관계없이 똑같이 10점을 주고 1점씩 낮아지면서 지름은 5mm씩 늘어난다.
결선은 같은 표적지를 사용하지만 얼마만큼 중심에 근접했느냐에 따라 점수를 다시 10등분한다.
즉 본선에 10점 짜리를 결선에서는 다시 10.9점부터 10.0점까지 세분한다.
따라서 본선은 첫발에 4백점이 만점이 되고 결선은 10발에 1백9점이 만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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