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득의남편생활백서] 거짓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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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있던 요구르트 못 봤어요?"

아내가 냉장고를 열더니 나를 본다. 나는 카인의 대답을 한다. "아벨이 어디 있느냐?"라는 하나님의 질문에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고 말한 카인의 대답을.

"내가 요구르트 지키는 사람이야?"

"아이들 샐러드 만들려고 놔둔 거란 말야. 당신이 먹었지?"

"아니."

물론 아내가 찾는 플레인 요구르트는 내가 먹었다. 나는 나이를 마흔 다섯이나 먹었지만 여전히 호기심이 많아 궁금한 건 못 참는다. 특히 입이 궁금할 때는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냉장고를 뒤져 '토요일 오후 다섯 시의 위장'처럼 허전한 호기심을 채운다.

내가 거짓말을 한 것은 아내가 "당신이 먹었지?"라고 물었기 때문이다. "당신이 먹었어?"라고 물었다면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 아냐. 아니라니까."

아내는 내게 바짝 다가와 그 크고 맑은 눈으로 내 눈을 본다.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유력한 용의자 바라보는 형사의 눈으로 본다.

"왜 이래? 난 오늘 냉장고 근처에도 안 갔다니까."

거짓말에는 몇 가지 요건이 있다. 상상력.뻔뻔함.순발력.기억력.자기확신 등. 그 중에서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뻔뻔함이다.

"전에도 내 아이스크림 당신이 먹었잖아."

"전과 있다고 이렇게 사람 의심해도 되는 거야? 이건 무고죄야! 그리고 명예훼손죄고."

아내는 웃는다. 아내는 법대를 나왔다.

"당신이 먹은 게 틀림없어."

"아니라니까. 생사람 잡지 마. 아이들이 먹었겠지."

"오늘 유겸이는 하준이네 가서 자고 온다고 했고, 휘강이는 학교 마치고 바로 영어학원 갔는데."

내게 불리한 증거들이 점점 내 목을 조여 온다. 차라리 이제라도 솔직히 털어놓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알량한 양심이 꿈틀거린다. 거짓말의 위기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자기확신이다.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는 자신을 먼저 속여야 한다.

"먹었으면 내가 먹었다고 하지, 왜 그런 것 갖고 거짓말을 하겠어? 그리고 애들이 집에 들렀다 갈 수도 있잖아."

"아이들이 먹었으면 이렇게 해 놓지 않아."

아내는 깨끗하게 물로 헹궈 엎어 놓은 요구르트병을 들어 보인다. 그렇다. 아이들은 저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제 와서 고백할 수는 없다. 나는 돌아갈 수 없을 만큼 멀리 와 버렸다.

"내가 씻었던가? 아, 맞아. 아까 주스 마시고 컵 헹구면서 내가 그랬지."

"아까는 냉장고 근처에도 안 갔다며?"

"그랬나, 내가? 생각이 잘 안 나네."

"자기 휴대전화 번호는 생각이 나?"

거짓말을 자꾸 하다 보면 어느새 자신이 정말 결백하다고 믿는 지경에 이른다. 이제 나는 내가 억울하다.

"나 참 정말 안 먹었다니까. 그리고 설사 내가 먹었다고 치자. 나는 우리 집에서 요구르트 하나도 마음대로 못 먹는 사람이야?"

"지금 그런 이야기가 아니잖아. 왜 자꾸 거짓말을 해? 나는 그게 나쁘단 거야."

내가 나쁘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출세하고 성공할 게 틀림없다. 이렇게 거짓말에 소질이 있으니 장차 정치인이 되든 박사가 되든 회장이 되든 할 것 아닌가.

나는 아내를 노려보며 이렇게 말한다.

"그 요구르트 네가 먹은 거 아냐?"

김상득 듀오 광고팀장 kimida@duone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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