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인민올림픽」개막 앞두고 프랑코 압정으로 무산된 한맺힌곳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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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1936년 7월18일 바르셀로나 시내 중심부에 위치한 카탈루냐 음악당.
금세기 최고의 첼리스트 파블로카잘스가 1백여명의 교향악단을 상대로 열심히 지휘하고 있다.
곡목은 베토벤 교향곡 9번.
19일 몬주익 스타디움에서 막을 올리는 인민올림픽 개막식 공개행사에 연주될 음악을 마지막으로 점검하는 최종리허설이 진행되고 있는 중이다.
이때 한 소년이 다급한 모습으로 무대앞에서 지휘봉을 흔들던 카잘스에게 달려가 한장의 쪽지를 건넸다.
장엄한 음악이 멈춰지고 메모지를 펴보던 카잘스의 표정이 일순 굳어지면서 곧이어 카잘스로부터 쪽지내용을 전해 들은 단원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프랑코가 이끄는 반란군이 바르셀로나시에 진입했다는 소식이었다.
36년 바르셀로나에서 개최될 예정이었던 인민 올림픽이 일거에 무산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바르셀로나는 공화국군과 프랑코 반란군간에 피비린내 나는 혈육상잔에 들어갔으며 완강히 저항하던 공화국군의 시체를 프랑코군이 전리품처럼 쌓아두었던 곳이 바로 몬주익 경기장이다.
히틀러의 나치즘을 고무시키는 베를린올림픽(36년)의 참가를 거부한 23개국이 모여 별도의 올림픽을 개최하려 했던 36년 바르셀로나 인민 올림픽은 대회개막을 하루 앞두고 이처럼 물거품으로 사라졌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첼로의 거장 카잘스는 프랑코의 독재에 항거, 프랑스로 망명했고 73년에 연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조국 땅을 밟지 않았다.
스페인 내란 당시 프랑코군에 최후까지 저항을 벌인 지역이 바르셀로나이며 이런 이유로 인해 프랑코는 36년간에 걸친 자신의 통치기간중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 지방을 탄압해 왔다.
마드리드측으로부터 유·무형의 압력과 탄압에 시달려온 바르셀로나인과 카탈루냐인들이 분리독립을 표면적으로 요구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며 이번 올림픽을 개최하는 바르셀로나측이 『우리는 70년 동안 내팽겨겨진채 아무런 발전을 이루지 못한 정체상태를 계속했다』며 노골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은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들은 한 예로 프랑코 정권이 바르셀로나시내 고층건물건축을 너무 심하게 규제하는 바람에 정부규제를 피하기 위한 편법으로 1층은 0층, 2층은 로비 1층, 3층은 로비 2층으로 양식을 만들어 건축허가를 받았을 정도였다며 당시의 어려웠던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그러나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간의 불편한 관계는 프랑코 사망으로 스페인이 민주화를 이루고 난 76년 이후에도 줄곧 계속되고 있으며 이번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계기로 상호간의 불신과 불만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중앙정부에서는 올림픽 개최지인 바르셀로나와 바르셀로나가 속해 있는 카탈루냐주가 올림픽을 빌미로 분리독립 음모를 꾸미고 있다며 주정부와 바르셀로나시에 공개적인 경고성 메시지를 보내고 있고,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도 「해볼테면 해보라」는 식이어서 정치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인민올림픽이 총성과 함께 무산되고 그로부터 56년이라는 장구한 세월이 흐른 92넌 7월25일.
전세계 1백70여개국이 참가하는 사상최대 올림픽이 개막되는 바르셀로나 몬주익 경기장은 한많은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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