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3부] 가을(5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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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림=김태헌

이상한 기척에 눈을 뜨니 엄마가 꼼짝 않고 내 침대 발치에 서 있었다. 간밤 잠이 모자라 졸린 와중에도 나는 엄마의 표정부터 살폈다. 엄마는 뜻밖에도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표정이었다. 어제 내 팔뚝을 할퀴었던 라떼가 야옹 하고 울면서 털을 곧추세웠다. 자세히 보니 코코는 엄마 팔에 이미 안겨 있었다. 엄마가 침대에서 반쯤 몸을 일으킨 나를 향해 말했다.

"어머머, 뭐 이런 귀여운 게 다 있니? 얘 좀 봐, 어떻게 날 이런 눈으로 바라볼 수가 있지? …얘네들 어디서 왔어? 누가 잠깐 맡기고 간 거야?"

나는 얼른 일어나 욕실로 갔다. 문을 잠그고 샤워기의 물을 튼 것은 그 다음에 엄마에게 나올 반응이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코코는 벌써 엄마 뒤를 졸졸 따라다니고 있었다.

"엄마, 누나하고 형아가 어제 역 앞 공터에서 데리고 왔어. 키우게 해 줄 거지? 응? 응?"

기특한 제제가 먼저 일어나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우리가 시키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었다. 일은 잘 풀려가고 있었다. 제제가 떼를 쓰면 엄마는 대개는 당해내지를 못했다. 나는 너무 좋아하는 표정을 짓지 않으려고 애써 무심한 얼굴로 식탁으로 갔다.

"얘네들을 키우려고 데려왔다는 거야? 그럼?"

엄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 우리가 안 데려오면 죽게 생겼는데…. 엄마가 맨날 그랬잖아 불쌍한…사람은 도와야 하고 생명은 살려야 한다고…."

식탁에서도 늘 책을 들고 있는 둥빈이 끼어들었다.

"내가 목욕도 시킬 거고 내 용돈에서 사료도 살 거고 내 방에서 키울게."

"어엄마아. 어엄마아…."

평소 같았으면 떼를 쓰는 제제를 둥빈과 나는 찌푸린 눈으로 바라보았겠지만 오늘은 일부러 무심히 굴었다. 엄마는 제제에게 치맛자락을 잡혀 이리저리 흔들리면서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우리 삼형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잠시 후, 한숨을 한번 길게 내쉬었다.

"졸지에 애가 다섯이구나."

우리 셋은 서로 마주 보며 씨익 웃었다. 엄마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그 작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코코를 안아들었다. 엄마로서도 싫지 않은 얼굴임은 분명했다.

"엄마 아주 어릴 때 엄마가 너무나 사랑한 고양이가 한 마리 있었어. 식구들하고 놀러가면서 이웃집 아줌마들이 집을 지켰는데 돌아와 보니 고양이가 죽어 있었어…. 아주 검은 고양이였는데, 엄마가 처음으로 사랑한 것이었는데, 어이가 없었지…. 그 이후로 고양이는 절대로 키울 생각이 없었는데…." 엄마는 코코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살아 있는 것들은 다 겁이 나서… 겁이 나서, 금붕어 한 마리 키우고 싶지 않았거든."

엄마는 그 다음 말을 하려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마도 아침부터 학교로 가는 우리를 두고 죽음이라는 단어를 쓰기 싫은 것 같았다. 아무튼 좋은 가을이었다. 아직도 덥고, 아직도 바람은 뜨거운 열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이번 가을에는 좋은 일이 많을 것 같았다.

"엄마, …나 공부 열심히 할게." 신발을 신다 말고 내가 말했다. 엄마는 나를 가볍게 째려보더니 "예방 주사부터 맞히고, 막딸이 아줌마한테 고양이 시중 맡기면 안 돼. 그리고 진짜 공부는 열심히 하는 거다" 하고 말했다. 전철 역으로 가는 동안 나는 쪼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옴마가 허락했음

십 초도 지나지 않아서 환호성이 담긴 메시지가 내 휴대폰으로 도착했다. 언제나 무거운 가방과 피곤한 머리가 무겁게 의식되던 전철역이 오늘따라 밝고 활기차게 보였다. 이상한 일이다. 무엇이든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을 가진다는 것은 세상을 바꾸어버리는가 보다. 나는 지금쯤 자고 있을 아빠에게도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퐈퐈, 두 고양이 딸이 생겼어요. 코코하고 라떼예요. 할아버지가 되신 걸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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