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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물 수출에 부농의 길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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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전통적인 경제학에서는 주어진 자원조건에 의해 결정되는 생산비에 따라 상품의 비교우위가 결정된다고 가르쳐 왔다. 이 때문에 지난 10여 년간의 농업구조 개선 정책은 생산성 향상이나 생산비 절감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돼 왔다. 값싼 해외 농산물 수입이 자유화되면 비싼 우리 농산물은 팔 데(市場)를 잃고 속절없이 망하게 될 것이라는 패배의식이 만연했다. 개방 반대를 외치며 아스팔트로 뛰쳐나온 농민들의 절망도 모두 여기에서 연유된 것이다.

물론 가격경쟁력은 어떤 상품의 국제경쟁력 수준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임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왜 수입차.화장품.의류 등 값비싼 해외 상품의 판매가 늘어 가고 있는가? 품질이나 품위 같은 비가격적인 상품성이 중요한 경쟁력 수준이 되고 있는 시대가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이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이 타결되면 망한다고 비관하던 한국 농업은 지난 10년간(1995~2005) 실질가격 기준으로 연평균 1.14%씩 오히려 성장해 왔다. 이 기간 중 가락시장의 품질 간 경락(競落)가격의 격차는 2배에서 5배로 확대됐다. 소득증가에 따라 농산물 선호체계가 달라지고 수요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농산물을 구입할 때의 선택기준이 종래의 가격 조건에서 품질이나 안전성 등 비가격적인 조건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농산물의 국제경쟁력도 가격 경쟁력뿐 아니라 품질이나 서비스 경쟁력에 의해 총체적으로 결정된다는 사실을 우리 쌀 수출 사건이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사계절이 분명한 기후조건과 우수한 기술수준 덕분에 우리 농산물의 품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싼 가격을 앞세운 해외 농산물과 맞서 품질과 서비스 등 비가격 경쟁력으로 우리 시장을 지켜내고 세계 시장 확보에 나서야 한다. 이미 식탁용 수입쌀은 절반 수준의 유리한 가격조건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의 외면 속에서 재고가 쌓이고 있다. 파프리카.장미.백합 등은 일본 시장 점유율 1위 농산물이다.

공업화 초기 시대의 공산품 수출은 중저가 진출 전략에 의존했다. 그러나 농산물 수출 전략은 웰빙(well being)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고소득 국가의 틈새시장 진입을 노리는 고품질 고가 전략이어야 한다. 한민족의 문화와 전통이 배어 있는 수출 농산물을 만들어 내자. 끝없이 진화하고 있는 첨단기술을 응용한 기능성 농산물을 개발하자. 세계 3위의 교민 대국으로서 전 세계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사회와 연계해 수출시장을 개척하자.

일본.미국.유럽연합(EU).중국의 고소득층이 1차적인 목표시장이다. 전 세계의 채식주의자, 특히 인도 국민에게 단백질이 풍부한 우리 된장을 수출하는 길을 열어야 한다. 성인병과 비만으로 허덕이고 있는 육식(肉食)문화의 서구인들에게 한류 열풍을 타고 전통 한식요리를 수출할 수 있어야 한다.

한심한 규제의 철폐는 물론 농산물 수출 지원 시스템을 강화하자. 농산물 수출기반 조성과 세계시장 개척에 우리의 지혜와 힘을 집중시키자. 농산물 수출로 우리 농업을 다시 일으키는 길은 멀고 험난하다. 그러나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 우리는 드럼통을 펴서 만든 차(시발택시) 기술로 세계시장에 우뚝한 자동차 수출국 지위를 확보한 저력 있는 국민이 아니던가?

성진근 (사)한국농업경영포럼 이사장 충북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