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란한 영접 덤덤한 시민(촛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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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일 남북간 경제협력·핵사찰·고향방문 등을 논의키 위해 서울에 온 김달현정무원부총리 등 북측일행 10명을 맞은 대부분의 서울시민은 무덤덤하다 못해 일견 냉정한 반응을 보였다.
거개가 『오면 오는게지』 『일단 화해분위기 조성은 됐다지만 더 두고봐야 하지 않겠냐』는 등 과거와는 달리 의외라할만큼 차분했다. 자신을 6·25때 월남한 「38따라지」라고 밝힌 김모씨(62)는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된이래 20년이 흘렀다』며 『통일이니 핵사찰이니 거창한 명제도 좋지만 이제껏 8·15 이산가족 고향방문 등 쉬원 것 한가지라도 제대로 이룬적 있었냐』고 이번 방문에 큰 의미를 두지않았다. 대학생 강모군(25)은 『국민들은 이제 단순한 만남 그 자체보다 「실질적인」상호교류를 원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손님을 직접 맞이하는 편에서는 방문 자체를 요란스레 부각시키려 했다. 김 부총리 일행의 숙소로 정해진 힐튼호텔은 남대문경찰서소속 형사·안기부직원 등 1백여명이 건물을 점거하다시피 도처에 깔려 삼엄한 경호를 폈고 영문을 모르는 외국인 투숙객·방문인들은 이를 보고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오후 방문예정지에 포함됐던 롯데백화점의 경우 각 언론사에 팩시밀리를 보내 취재요청을 하는 등 대대적인 선전이 물의를 빚어 결국 백화점 방문계획이 취소되었다. 북측일행이 비원을 거쳐 롯데월드 민속관 관광을 할때 양복을 입은 경호원·기관원들이 몰려다니자 주변에서는 『롯데그룹 회장이 왔나보지』라며 스쳐 지나갔다. 최 부총리가 주최하는 만찬장소인 하얏트호텔 2층에서는 기관원으로 보이는 2∼3명이 일행입장때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유도했으나 주변호응이 없자 머쓱해 하며 자리를 뜨는 일도 있었다.
시민들의 조용한 반응과 당국의 요란한 영접이 대조를 보인 회담의 성과가 어떻게 나타날지 자못 궁금하다.<봉화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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