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은 마음의 벽 허무는 작업"영적 교감 얻는 행위예술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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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마흔 두 살의 나이에, 그것도 사내가「울고싶다」「울었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또 마음놓고 목놓아 울어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강만홍, 그는 바로 그런 사람이다. 전위예술가로 불리며 서울예술전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훈장」인 그는 사람들에게 울고싶을 때면 체면과 통념에서 벗어나 과감히「울어 버리라」고 말한다. 그리고 눈물도「명상」이라는 아리송한 말을 한다.
『사람들은 울음을 자제해야하는 감정의 찌꺼기 정도로 생각하며 그렇게 묻어놓고 살아가지요. 그러나 눈물은 처절한 고통이나 행복 때문에 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요. 눈물이란 자기 안에서 넘쳐오는 생명의 울림이 억제할 수 없을 때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켜켜이 쌓인 찌꺼기들을 씻어주는 눈물은 자신의 맑은 영혼과 마주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매체고, 그것이 바로「명상」이라는 얘기다.
그는 또 남들이 쉽게 지나쳐버리는, 날마다 떠오르는 태양과 맑은 달빛, 칠흑 같은 어둠과 죽음, 눈물과 웃음, 숨쉬기, 심지어 성조차 자기 내면의 꿈틀거리는 깨달음을 만날 수 있는 명상의 길이 된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최초의 명상 체험은「모질게도」다름 아닌「사랑하는 아들의 죽음이 가져다준 선물」이었다고 한다.
충남 천안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예술전문대를 졸업하고 언어가 극도로 절제된 실험적인 작품 만들기에 심취했다. 그때 그는 이미 재즈·사물놀이가 함께 어우러지는 실험극을 시도하기도 했고 배 곯며 밤새워 연습해도 행복하기만 한 가난한 예술가에 불과했다.
그런데 78년 봄 가난한 맞벌이 생활 때문에 잠시 처가에 맡겼던 세돌 박이 아들이 물웅덩이에 빠져 죽었고 그는 시골마루 기둥에 묶여 몸부림치며 포대기에 뚤뚤 말려 나가는 아들을 보곤『연극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마치 미친개처럼 쏘다녔다』고 한다.
3년 후 그는 아들의 영혼을 달래보내는 씻김굿, 아들이 그에게로 와 신이 내리는 내림굿등 세 차례 굿을 통해 신비의 체험을 했고 그때의 경험을 갖고「공연을 통한 영의 교감」을 주제로 대학원 논문을 썼으며, 82년엔 연극『점지』를 공연했다. 그리고 82년6월「느닷없이」인도로 떠났다.
인도와의 만남을 그는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한다. 남녀가 눈이 마주쳐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그냥 이끌렸고 인도로 가야만 살 것 같았다』고만 말한다. 언어도 통하지 않고 기후도 맞지 않는 그곳 인도 구석구석에서 오히려 고향의 체취를 느끼듯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며『울었다』는 한마디로 인도 순례를 설명하기도 한다.
45도를 오르내리는 더위와 열병에서 오줌을 마셔가며 버티기도 했고, 히말라야 토굴에서 성자들과의 만남 속에 명상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느 날 우연히 노 무용가 크리쉬나 찬드라 나익이 추는 의식무인「차우」(도춤)를 보곤 느리면서 장중한 그 춤에 반해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인도 순례와 명상생활·차우, 그는 그렇게 인도를 마음껏 호흡하다84년 가을 인도와 헤어질 때가됐음을 느끼고 귀국했다.
록팰러 장학금으로 미 가더드대 대학원에서 공연예술 학을 공부하고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연극무용과 교수로 서양학생들을 가르친 것은 그 후의 일.
세계 전위연극의 메카인 뉴욕 라마마 극단 배우로『오이디푸스』의 주역·안무를 맡기도 했고『디오니소스』『페드라』등의 전위연극에도 참여한 그는 이제 세계가 알아주는 전위예술가다.
『마음을 열고 자신을 벗어버리고 나면 전혀 새로운 세계를 접할 수 있습니다』라며 그는『예술이란 마음의 두터운 벽을 허무는 작업』이라고 정의한다. 그런데 그는 지난 1월KBS 신인 배우 나체연기수업이 문제가 되었던 일로 마음의 상처를 입었다며 『수십 명이 함께 수업하는 자리에서 옷을 벗으라고 강요한다고 말을 듣는 젊은이가 요즘 어디 있겠습니까. 그들이 연기에 몰입해 스스로 옷을 벗은 예술행위를 사람들이 오히려 속된 잣대로 불순하고 편협하게 이해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고 항변한다.
최근 그는 마음을 가다듬으며 그동안의 정신적 편력을 풀어놓은 명상 에세이『숨』이라는 책을 세상에 내놓고 지금존재의 공간을 넘나드는 자아를 보여줄 행위예술공연(8월초 예정) 을 준비하고 있다. 공연을 마치고는 미 트리니티칼리지·위슬리안 칼리지에서 객원교수로 1년 간 동양연극·차우·명상 등을 강의할 예정이라고.
요즘에도 마음만 내키면 초저녁이고, 어두운 새벽이고 가리지 않고 집에서 가까운 삼각산에 올라가 춤을 추거나 가만히 앉아 바람과 나무와 대화를 나눈다는 그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마음의 쓰레기를 다 들춰내고 먼지로 뒤덮인 영혼을 맑게 닦아 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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