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41기 KT배 왕위전' 단명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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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8강전 하이라이트>

○ . 윤준상 6단 ● . 윤찬희 초단

장면도(53~66)=행마는 물과 같다. 많은 프로가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않는다(流水不爭先)'는 옛말을 귀하게 생각하는 것도 물의 흐름 속에 행마의 본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인가. 흙먼지 자욱하고 욕망과 살기가 번득이는 바둑판 위에서 물처럼 유유히 흘러간다는 게 말이다.

흑▲의 공격이 필사적이라면 백△의 어깨 짚기는 가볍다. 살려달라는 모션이지만 알고 보면 하변 흑대마에 칼날을 겨누고 있다.

판이 꼬인 탓에 흑의 행마는 헝클어졌고 목표도 불분명해졌다. 우선 53은 공격인가, 도주인가. 반대로 백의 행마는 54의 웅크림이 보여주듯 '용의주도'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A의 절단이 빤히 보이는 상황에서 윤찬희 초단은 문득 '던지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다. 결국 55로 연결하기는 했으나 갈 길은 급한데 이렇게 제자리걸음을 해야 하는 처지가 원망스럽기만 하다.

56, 58은 시원하고 두텁다. 판이 좋아지자 윤준상의 행마는 더욱 윤기를 띠고 있다. 59에는 64까지. 알토란 같은 실리를 챙기며 선수까지 잡아낸다. 59로 버텨본다면'참고도' 흑1로 빠져야 한다. 그러나 백2로 꼬부리는 수가 공수의 급소여서 흑대마가 너무 약해진다(A, B가 모두 선수여서 흑대마는 반집밖에 없는 작대기 말이다).

이 판은 불과 98수에 백 불계승으로 끝난다. 윤찬희 초단은 강자들을 연파하고 8강까지 왔으나 이 판에선 초반에서 크게 실패한 나머지 비몽사몽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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