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 레슨] 고정관념을 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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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소년들은 실력 향상이 무척 빠르다. 두뇌가 유연하고 흡수력이 뛰어난 때문이다. 30대가 넘어서면서 서서히 실력 향상은 느려진다. 세상을 알면 바둑을 이해하기 쉬워야 마땅할 텐데 왜 반대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 고정관념 탓이다. 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두뇌를 차지하고 있는 고정관념. 그것이 사고의 유연성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장면1>=조훈현9단(흑)과 이창호9단(백)이 격돌한 명인전 도전기 최종국이다. 형세는 극도로 미세한데 이9단이 백1, 3으로 건너붙여왔다. 검토실은 순간 깜짝 놀란다. 수가 나버린 것일까. 흑A는 백B의 단수로 안된다. 그렇다고 흑C는 백D로 그만이다. 흑은 이 난국을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장면2>=흑1로 1선에 가만히 빠지는 수가 유일한 해결책으로 '아하'하고 무릎을 치게 만든다. 2선이 패망선이라면 1선은 사망선(死亡線)이다. 바둑판 위의 1선은 죽음의 선이며 막다른 골목이며 가서는 안 될 곳이다. 이런 우리의 고정관념이 흑1로 두는 수를 쉽게 떠올리지 못하게 한다.

백A는 흑B로 안 된다. 백은 부득이 2로 막았고 흑3 잡아 난제가 해결됐다. 백C로 둘 수 없는 귀의 특수성이 문제 해결의 또 다른 포인트였다. 조훈현9단은 1선에 대한 고정관념을 가볍게 깨뜨리며 난관을 벗어났고 형세에서도 간발의 차로 앞서나갔지만 승부에선 반집차로 무릎을 꿇었다. 이긴다는 것은 진정 산 넘어 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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