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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클로즈 업] 가뭄 들자 朴도사에 비소식 물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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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산 명리학의 사상적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도교를 만나게 된다. 내단서(內丹書)인 '성명규지'도 비중있는 도교의 경전이다. 영암사를 방문하였던 윤 선생도 단학을 연마하던 도교의 수련가이자 신선이었고 지리산과 인연이 깊었다. 지리산은 한국에서 가장 주목할 산이다.

계룡산파는 미래를 예언하는 주역의 전문가를 많이 배출했고, 속리산파에선 사람을 치료하는 의약(醫藥)에 밝은 도사가 많이 나왔고, 오대산파는 도(道).불(佛)이 혼합된 경향을 지니고 있고, 금강산파는 축지법과 차력에 능하였고, 묘향산파는 우리 민족의 뿌리인 단군사상을 보존하고 있었다. '천부경'과 '삼일신고'는 묘향산파의 노력에 의해 그 맥이 아직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계룡산파는 군부대가 들어오면서 타격을 받았고, 금강산과 묘향산은 이북에 있었기 때문에 그 맥이 단절되었을 것이다. 지리산파의 특징은 1백살을 초과하는 신선을 많이 배출하였다는 점이다. 산이 육산(肉山)이라 후덕한 편에다, 골짜기가 많고 산의 둘레가 넓어 은둔하기 쉬운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저수지가 깊어야 큰 고기가 살 수 있듯이 산이 넓고 깊어야 큰 인물이 배출된다. 저수지가 얕으면 낚시꾼들의 눈에 금방 띄어 사냥을 당해 버리고 만다. 한국에서 지리산은 숨어 있을 만한 산이었다.

제산의 가장 큰 스승이었던 윤 선생은 충남 아산 출신이었다. 한국전쟁 때 지리산으로 피란 와 처음에는 함양에서 한약방을 하다 제반 여건이 갖춰지자 지리산 깊숙이 들어가 눌러 앉은 경우라고 들었다. 여기서 제반 여건이라 하면 법(法).재(財).지(地).려(侶) 네가지 조건을 말한다. 법은 스승이고, 재물은 돈, 지는 거주할 암자, 려는 같이 공부할 도반이다. 이 네가지를 갖춰야 신선 공부에 착수할 수 있다. 돈이 필요한 이유는 초기 공부 과정에서 의식주에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독신자는 부담이 작지만, 이미 결혼한 사람 같으면 가족들의 생계를 마련해 주고 산으로 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족 걱정 때문에 공부가 덜 되어 하산하고 마는 우를 범한다. 제갈공명이 유비를 따라 나설 때 가족들 생계용으로 뽕나무 3백주를 마련해 주고 왔다는 말이 있듯이, 기혼자는 이 뽕나무 3백주가 가장 큰 짐으로 작용한다. 필자도 뽕나무 3백주 때문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뽕나무 3백주는 마련할 길이 감감하고, 세월은 자꾸만 흘러간다. 영국의 독설가 버나드 쇼의 묘비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고 한다. '우물쭈물 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제산은 1970년대 후반 계룡산으로 들어온다. 계룡산에 들어올 때 당시로는 거액에 해당하는 1천만원이 수중에 들어왔다. 제산의 능력을 일찌감치 파악하고 제산을 후원하였던 김복동 장군과 농수산부 장관을 하던 장덕진씨가 함께 보내준 돈이라고 한다. 생계 걱정 말고 산에 가서 공부에 전념하라는 의미였다. 1천만원 가운데 7백만원은 가족에게 생활비로 남겨 놓고, 나머지 3백만원을 가지고 계룡산 법정사에 머물렀다.

제산이 계룡산 시절 비용을 대 발행한 책이 한 권있다. '선불가진수어록(仙佛家眞修語錄)'이다. 선가와 불가의 핵심 노하우를 밝혀 놓은 책이다. 여기에 보면 여자가 제대로 수행 하기 위해서는 생리를 끊어야 한다고 되어 있다. '참적룡'(斬赤龍)이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적룡을 베어라'다. 여자의 멘스를 붉은 용으로 표현하였다. 멘스가 매달 나오면 영(靈)이 빠져버리므로 저수지에 수문을 세워 물을 가두듯이 여자는 생리를 인공적으로 중단시켜야만 본격적인 수행의 길로 접어든다는 내용이다. 만약 나이가 들어 멘스가 이미 끝나버린 여자는 단전호흡을 통해 멘스를 회복시킨 다음에 다시 끊는 것으로 되어 있다. 반대로 남자는 정액을 가두어야 한다. '항백호'(降白虎)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이다. 정액이 흰색이므로 백호로 상징되고, 이 정액을 밖으로 배출시키지 않고 내면에 가두어 두어야만 수행이 진전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백호의 항복을 받아야 한다. 즉 성적인 욕망을 컨트롤 해야 한다는 말이다. '선불가진수어록'에는 '항백호'와 '참적룡'이 남녀 수행법의 핵심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이러한 부분이 도교 수련의 독특한 점이다. 불교나 유교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대목이기도 하다.

주목할 점은 이 책의 맨 뒷부분이다. 끝장에는 무오년(1978년) 3월 20일에 발행되었다고 적혀 있다. 저자는 백운산인(白雲山人) 윤일봉(尹一峯)이고, 발행인은 계룡산인(鷄龍山人) 박제산(朴霽山)으로 인쇄되어 있다. 발행인 박제산은 박도사다. 그렇다면 저자인 백운산인 윤일봉은 누구인가? 종합적인 정황을 고려할 때 백운산인 윤일봉은 윤 선생으로 추정된다. 50년대 후반 비오는 어느날 저녁 백운산 영암사를 방문할 때 고무신에 흙을 묻히지 않았다는 그 문제의 인물이다. 이를 종합하면 78년 이 책을 발행할 때까지 윤일봉은 제자인 제산과 모종의 커넥션을 통해 연락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을 추론할 수 있다. 신선 소리를 들으려면 적어도 1백살은 넘어야 한다. 말이 아니라 몸으로 증명해야 한다. 나는 최근 이 윤 선생이 지리산에 아직 생존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1백10살이 좀 넘는다고 한다. 법명은 청허선사(靑虛仙師)라고 알려져 있다. 그의 제자가 "선생님, 선생님은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계시면서도 왜 세상에 나가 경륜을 펼치지 않으십니까?"하고 질문을 하였다고 한다. "너 영화 본 적이 있지? 한번 본 영화를 또 보면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 한번 본 영화를 나더러 또 보라는 말이냐?"

신선 이야기를 길게 하면 나만 정신병자 취급 받으니까 입을 닫아야겠다. 그 대신 70년대 후반 제산의 계룡산 시절 일화를 하나 소개할까 한다. 당시 대단한 가뭄이 들었다. 정부에는 비상이 걸렸고, 주무 부서인 농수산부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장관은 장덕진씨였다. 박정희 대통령은 각료 회의에서 가뭄대책을 세우라고 다그쳤고, 해당 부서 장관인 장덕진은 그 대책 마련에 부심하였다. 대책이란 양수기 수만대를 외국에서 사오는 일이었다. 그때 장 장관은 평소 알고 지내던 박도사가 생각났다. 양수기 수만대를 외국에서 수입하려면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는데, 혹시 박도사에게 물어보면 무슨 수가 없을까 해서였다. 계룡산에서 공부 중이던 제산은 장덕진 장관에게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 내가 천기를 보니까 몇월 며칠에 반드시 비가 오게 되어 있다. 그때까지 견뎌보라"고 조언했다. 장 장관은 양수기 수입을 차일피일 미루었다. 얼마 후에 정말 비가 올 것 같으면 양수기를 구입하는데 들어가는 예산을 아낄 수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약 보름 정도를 적당한 이유를 대면서 미루었다고 한다. 만약 그날 비가 오지 않으면 장관 목이 날아갈 수도 있었다. 정말 비가 올 것인가. 하지만 비가 오기로 예언되어 있는 날이 내일로 다가왔는데도, 비가 올 조짐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저녁 무렵에 밖에 나가 하늘을 보니 별만 총총하게 빛났다. 일기예보도 비가 오지 않는다고 하였다. 아! 나는 박 도사 말 믿었다가, 내일쯤 목이 날아가겠구나! 하고 체념하였다. 그 다음날 아침도 날씨가 맑은 편이었는데, 점심 때가 지날 무렵부터 갑자기 하늘에 먹구름이 시커멓게 몰려오는 것이 아닌가. 얼마 있다가 장대 같은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 전국적인 가뭄이 해갈되었다. 나는 살았다! 대한민국 만세다!를 외쳤음은 물론이다.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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