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용트럭 한대로 「운수재벌」부상/조양상선그룹 박남규회장은 누구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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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내실」 우선 해운 합리화때 위기 넘겨/김치열·하영기씨 등과 “화려한 혼맥”
서울 광장동 워커힐아파트 박남규조양상선그룹회장 자택은 며칠째 빈집이었다.
하영기제일생명사장이 정보사부지매매건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남으로써 이 회사의 오너이자 하 사장의 사돈인 박 회장 역시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더욱 강하게 제기된 8일 밤도 그는 집에 없었는데 아들집에 칩거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본래 행동이 조심스런 사람이다.
특히 경영스타일은 철저하게 내실을 다지는 안정경영을 택하고 있어 이번 사기사건과 같이 어리숙한 방법에 쉽게 넘어갔다는 것이 납득이 안된다는게 재계의 중론이다.
1920년 경남 밀양에서 빈농의 3남2녀중 장남으로 태어난 박 회장은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14세때 일본으로 건너갔으며 고베(신호)에서 돈을 벌어 3년뒤 한국에 돌아와 일본군이 쓰던 군용트럭 한대를 사 버스로 개조,운수업을 시작한 것이 오늘날 조양상선그룹의 모태가 됐다.
박 회장은 이어 1946년 천일정기화물,1949년 천일여객을 설립,운수업체로서의 모양을 갖췄으며 60년대들어 선박 2척으로 이안상선을 설립해 해운업에 손을 댔다.
이안상선은 63년 이름을 조양상선으로 바꾸고 한일항로를 확보,기반을 닦았으며 박 회장은 73년 고 박정희대통령과 대구사범 동문이었던 서정귀씨(작고)로부터 제일생명보험과 계열기업인 남북수산·낙동흥업 등을 인수,재벌의 대열에 뛰어들었다.
조양상선그룹은 또 동서울컨트리 등 2개의 골프장을 갖고 있다.
조양상선은 80년대 해운합리화조치로 대부분의 해운회사들이 통폐합되는 등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도 비교적 영향을 받지 않았는데 이는 박 회장의 경영스타일이 무리한 확장보다는 내실을 다지는 쪽이었기 때문인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박 회장은 89년 4남1녀중 장남인 재익씨(47)에게 조양상선 사장자리를 물려주고 경영일선에서는 한발짝 물러났으나 그룹의 중요한 일에는 여전히 관여하고 있으며 이번 정보사부지 매매계약에 대해서도 내용을 자세히 알고 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부동산거래가 잦은 보험회사인 만큼 당연한 일일 것이다.
특히 조양상선그룹은 표에서 보듯 10여개에 이르는 계열사의 대부분을 가족에게 맡기는 등 족벌중심 경영체제를 갖고 있어 박 회장이 정보사부지의 매매계약을 모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또 내무·법무장관을 지낸 김치열씨,한은총재를 지낸 하 사장과 사돈을 맺는 등 그룹규모에 비해 혼맥이 화려한 편이다.
박 회장은 그러나 과묵한 스타일에 사생활이 깨끗하고 생활도 검소한 편이며 대도 조세형사건때 귀금속을 도난당했으나 그 내용이 초라해 수사관들도 놀랄 정도였다는 후문이다.
박 회장은 한국의 「하워드 휴즈」로도 불릴만큼 외부와의 접촉을 꺼리고 있으며 재계의 크고 작은 모임에도 거의 나오지 않고 있다.<길진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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