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3부] 가을(53)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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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림=김태헌

"곧 어두워질 텐데 역 앞 공터는 좀 무서워."

둥빈은 "누나라면 그런 걱정 안 해도 될 텐데" 하며 느물거리더니 슬그머니 일어설 준비를 했다.

"게다가 엄마 잃은 고양이라니, 누군가 데려가서 약으로 푹 고아 먹으면 어떻게 해? 참치 통조림을 좀 사가지고 가지 않겠니?"

둥빈은 잠시 생각하다가 서랍을 열어 지폐를 더 꺼내며 말했다.

"만원은 누나 꿔주는 거구, 참치 통조림은 내가 살게."

이상하다. 멀리서 다가갈 때 나는 운명 같은 것을 느꼈다. 나를 부르는 소리 같은 것이 느껴지는 듯했던 것이다. 그때 나는 이미 결심했는지도 모른다. 내 전화를 받고 나온 쪼유는 이미 거기 서 있었다. 고양이 네 마리들이 라면 박스 속에서 올망졸망 모여 있었다. 나와 쪼유 그리고 둥빈은 다가가 고양이를 들여다보았다. 인터넷을 보았는지 내 또래의 아이들 몇이 이미 고양이들을 보고 있었다. 내가 참치 통조림을 따서 하나를 내밀자 그중의 한 고양이가 통조림을 잡고 있는 내 팔을 날카롭게 할퀴었다. 순간 눈물이 핑 돌 만큼 따가웠다. 하지만 따가웠던 것은 꼭 팔만은 아니었다. 언젠가 버려진 고양이들이 사람들 곁으로 절대 오지 않는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상처받은 만큼 그들은 사람들을 멀리했고 믿지 않았고, 아무리 먹이를 주고 아무리 네게 적대감이 없다는 것을 밝히려 해도 그들은 오직 사람을 적대적으로 대할 뿐이라고. 다가가는 이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은 상처를 주는 일뿐이라고. 하지만 그게 어디 고양이만의 이야기일까?

"둥빈, 우리 이 고양이들을 키운다고 하면 엄마가 뭐라고 하겠지?"

둥빈은 잠시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불쌍하다 누나. 사람들이 몰려와서 엄마 고양이도 어디론가 도망가버린 거 같은데."

쪼유는 자신의 엄마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하고 있었다. 얼굴이 어두운 걸 보니 그쪽 엄마가 안 된다고 하는 모양이었다. 전화를 끊고 쪼유는 내게 다가와 고개를 저었다.

"대학 가서 키우래. 대학 가서 네 돈 벌어 독립하고 나면…. 참, 대학 갈 동안 이 고양이들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말이야. 뭐든지 대학 가고 나면, 이야."

우리들 셋은 고양이들이 참치 통조림을 먹는 것을 보면서 어두운 공터에 엄마 잃은 고양이들처럼 망연히 서 있었다. 가을이 다가오긴 왔는지 팔뚝에 다가오는 바람이 제법 서늘했다. 고양이가 할퀸 자국이 붉은 볼펜으로 그은 것처럼 선명했다. 나는 다가가 나를 할퀸 회색 고양이를 조심스레 안아 내 티셔츠 폭에 넣었다.

"누나 어떻게 하려구?"

"데려갈 거야. 키울 거야. 얘네들 엄마도 없잖아. 여기 두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내 목소리가 너무 비장했는지 쪼유도 둥빈도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성큼성큼 집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엄마가 밤 외출을 한 것은 운명일지 모른다. 나는 그렇게 믿고 싶었다. 엄마가 정 안 된다고 하면 내일 다시 이 고양이를 쪼유가 잘 안다는 수의사에게 데려다 주어도 좋을 것이다. 정 안 되면 즐거운 서점의 잭 다니엘 아저씨에게 부탁해도 될 것이었다. 회색 고양이는 발톱을 세워 내 얇은 티셔츠를 찢어질 듯 움켜쥐었다.

"누나 잠깐만."

둥빈이 다시 고양이들을 향해 달려갔다. 다시 돌아온 둥빈의 티셔츠에는 얼룩 고양이가 한 마리 안겨 있었다. 그 고양이는 회색 고양이와는 달리 둥빈의 품 안에서 얌전했다. 내가 의아한 표정을 짓자 둥빈이 말했다.

"그래도 형젠데, 두 마리는 함께 있게 해 주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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