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군자리에서 오거스타까지 17. 박정희 전 대통령 (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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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中)이 1968년 서울 여의도 개발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중앙포토]


한국골프가 오늘의 영광을 누리게 된 데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골프사랑'이 한몫했다. 그분은 골프에 대한 관심도 높았고, 직접 필드에서 플레이를 즐긴 첫 대통령이었다.

박 대통령은 방한하는 외국 정치인들을 필드에서 만나 국정을 논의하고, 70년에는 각 군 대항 골프대회를 열어 군 지휘관들에게 골프를 배우도록 했다. 군 비행장에는 장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골프장을 지었다. 박 대통령은 측근에게 늘 골프를 권했다. "내가 골프를 해보니 몸에 좋더라" "술만 마시지 말고 될 수 있으면 골프를 하는 게 좋다"고 경험담을 들려줬다. 또 5.16 군사쿠데타 주역들에게 "일요일엔 어디에 가 있는지 좀체 찾을 수가 없으니 이제는 찾기 쉽게 골프장에 가라"며 취미생활로 삼도록 했다. 이런 이유로 김종필.김형욱씨 등 군 출신들이 골프를 즐겼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한국골프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서울컨트리클럽이 박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폐장된 것이다.

박 대통령은 72년 서울컨트리클럽의 문을 닫았다. '자라나는 이 나라의 차세대 주역인 어린이들에게 꿈동산으로 물려주자'는 명분 아래 이곳을 어린이대공원으로 꾸며 이듬해 개장했다.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들이 마음놓고 안전하게 뛰어다닐 수 있는 어린이공원 부지로 군자리 골프코스를 점찍고 박 대통령을 졸랐다는 설도 있다. 대통령 경호 문제도 하나의 이유가 됐다고 한다. 개장 때만 해도 서울 외곽이었던 군자리 코스 주변이 점점 들어서는 집들로 인해 도심지가 되자 경호실에서 문제를 제기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 대통령이 라운드할 때는 전화가 자주 왔다.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지만 주로 나랏일에 관한 내용이었던 것 같다. 골프밖에 아는 게 없는 내가 얼핏 듣기에도 박 대통령은 나라 걱정을 많이 하는 듯했다.

박 대통령의 골프를 회상해 보면 잘 치려기보다는 즐기려고 했던 분이었다. 특히 그린 위에서 퍼팅에 크게 신경쓰지 않는 골퍼였다. 하지만 골프는 퍼팅이다. 보통 아마추어 골퍼는 한 라운드에서 2, 3개의 퍼팅을 한다. 모든 홀에서 2퍼트를 한다고 가정하더라도 90타를 치는 골퍼에겐 타수의 40%가 퍼팅이다. 스코어를 잘 내고 싶은 아마추어 골퍼는 우선 퍼팅 연습을 해야 한다. 필드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클럽이 퍼터이니까 말이다. 집에 퍼팅 매트를 하나라도 꼭 장만하길 바란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실력 차이를 가름하는 가장 큰 요인도 퍼팅이다. 프로는 아무리 먼 거리라도 버디를 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한동안 나는 잦은 외국대회 출전으로 박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없었다. 내가 박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75년 육영수 여사 서거 이후였다. 어느 골프장에서 박 대통령을 뵈었는데 표정이 밝지 않았다. 골프 이야기를 쓰면서 왜 박 대통령 얘기를 이리 오래 하느냐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유는 젊은 시절 내가 만났던 박 대통령은 정말 기억에 남는 분이기 때문이다.

한장상 KPGA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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