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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아, 미안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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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일주일 뒤면 '성년의 날'(21일). 매년 그랬듯이 이 땅에 새로운 청춘들이 탄생하는 날이다.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옛날 같았으면 남자에게는 갓을 씌워주고, 여자에게는 머리에 쪽을 쪄줄 텐데…. 그러나 지금이 옛날이 아니듯, 그러한 것조차 없어진 지 오래다. 정부의 의례적인 행사로서 전통의 조그마한 귀퉁이로만 남았을 뿐.

곧 쏟아져 나올 이 땅의 청춘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고개를 들 낯이 없다. 기업은 일자리 창출에 인색하다. 정부의 청년실업 대책은 헛돈다. 언론도 뾰족한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 이들 청춘에게 우리는 어떤 갓을 씌워줄 것이며, 어떻게 쪽머리를 만들어줄 것인가. 그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용기를 잃지 말라"는 상투적인 말뿐. 그런데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지금의 청춘들에게 이 사람의 이야기를 전해주면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까. 국내 굴지의 소프트웨어 업체 티맥스소프트를 만들어 크게 성공한 박대연(52)의 삶 말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일곱 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를 암으로 떠나보냈고, 먹을 것이 없어 젖먹이 막내 동생의 입양을 눈물로 지켜봐야 했다. 자신은 운수회사 사환으로, 동생들은 구두닦이로, 누나는 가정부로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뒤늦게 야간 중.고등학교를 다녀 낮에는 사환, 밤에는 학생, 집에서는 소년가장이라는 삼중고가 이어졌다. 은행원 시절 마련한 퇴직금을 들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지만 개학 전날 탈장으로 응급실에 실려갔다. 그러나 학비를 병원비로 쓸 처지가 아니었다. 그날로 퇴원하고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는데, 응급조치 부위가 자주 터져 온몸이 피범벅되기 일쑤였다. 그의 청춘은 눈물 젖은 빵이요, 피가 흥건한 우유였다.

지난주 오랜만에 그와 점심을 함께했다. 아침 6시까지 부산에 있는 거래처의 에러를 고쳐주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거의 매일 밤 에러 찾는 꿈을 꾼다는 그다. 청춘들을 위한 조언 요청에 그는 이렇게 말했다. "흔히 '이만하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혼을 바치지 않았으니까. 나는 목숨까지 걸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길 위의 철학자'라 불린 에릭 호퍼. 그의 청춘은 암흑이었다. 일곱 살 때 시력을 잃은 그는 15세 때 간신히 시력을 회복하고는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다. 이유는 단 하나. 또다시 시력을 잃을까봐였다. 18세 때 고아가 돼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채 평생을 노동자로 살아갔음에도 그는 위대한 철학자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이렇게 용기를 강조했다. "희망을 갖고 어려운 일을 시작하는 것은 쉽다. 그러나 그것을 마무리하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박대연이나 호퍼의 젊은 시절은 요즘의 청춘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얻어갈 것은 있지 않은가. 그럼에도 기성세대들은 면목이 없다. 여전히 실업의 갓과 쪽만 해주고 있다. '이태백'(20대 태반이 백수)이라는 청춘의 오명을 지워주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다음 선거에서 좋은 지도자를 뽑고 나라를 살찌우게 해서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방법이 최선이라는 것만 안다. 이 땅의 모든 청춘을 '길 위의 철학자'로 내몰 수는 없다. 그러기에 청춘, 너희들에게 정말 미안하다.

정선구 경제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