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썬앤문 감세청탁 배후를 밝혀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 후배가 경영하는 썬앤문 그룹에 대한 국세청 감세조치의 배후를 둘러싸고 의혹이 날로 커지고 있다. 손영래 전 국세청장이 세금을 깎아주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가 하면, 썬앤문 측에서 안희정씨를 통해 당시 노무현 후보에게 청탁 전화를 부탁했다는 진술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사건을 둘러싼 첫째 의혹은 검찰의 늑장 수사다. 서울지검 조사부는 지난 6월 썬앤문 감세 대가로 5천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서울지방국세청 4급 공무원 한명을 구속하는 선에서 사실상 수사를 종결했다. 검찰은 당시 손영래씨를 불러 조사하고 국세청을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를 진행해 왔으나 증거가 명확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6개월간 없었던 증거가 대검에서 수사에 나서니 갑자기 하늘에서라도 떨어졌다는 말인가.

썬앤문 그룹 감세조치는 그야말로 파격적인 것이었다. 국세청 내부자료에는 당초 1백80여억원의 세금을 매겨놓았던 것으로 나타나 있다. 그러다가 지난해 6월 孫씨가 4급 직원에게서 추징액이 최소 71억원이라는 보고를 받고서 이를 25억원 미만으로 감액토록 지시했으며, 최종 23억원만 추징했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이러니 국세청장보다 더 거물인 배후인물의 영향력이 작용했을 것이란 말이 나온다.

물론 관련자들은 이를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손영래씨는 어제 구속영장 실질심사 과정에서 "지난해 썬앤문 문병욱 회장과 김성래 부회장을 만난 사실은 있으나 盧후보나 안희정씨로부터 어떤 청탁이나 압력도 없었다"고 부인했다. 반면 수감 중인 문병욱씨는 "안희정씨에게 내가 전화를 걸어 盧후보에게 부탁해 달라고 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그렇다면 安씨가 盧후보 고교 후배의 부탁을 받고서도 이를 무시해버렸다는 것이어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검찰은 盧대통령이 감세 청탁과 무관한지, 당시 여권 실세들의 개입은 없었는지를 철저히 밝혀내야 한다. 그것이 늑장 수사로 손상된 검찰의 명예를 회복하는 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