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첫 금이다” 레슬링 양정모 나라가 “들썩”|76년 몬트리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민 여러분, 기뻐하십시오. 한국의 양정모(39·현 조폐공사감독)선수가 레슬링 자유형 62㎏급에서 마침내 금메달을 따냈습니다.』
제21회 몬트리올 올림픽 폐막을 하루 앞둔 76년8월1일 오전9시45분. 휴일 아침 정규방송을 중단하고 양정모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소식을 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한국이 런던올림픽(48년)에 출전한 이래 28년만에 첫 금메달을 따내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경기장인 몬트리올 모리스 리처드 체육관에는 『대한민국 만세, 양정모 만세』의 함성이 터져 나왔고 시상대에서 태극기가 가장 높이 오르는 것을 바라보는 23세의 정년 양정모의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애국가 연주가 끝나자 양정모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고 관중들의 환호에 답례한 뒤 2위 오이도프(몽고), 3위 데이비스(미국)의 손을 맞잡고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금메달 획득은 온 국민의 비원(비원) 이었습니다. 당시 김택수 대한체육회장은 장도에 오르기 전 회장자리를 걸고 반드시 금메달을 따내겠다고 국민들에게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선수단의 분위기도 비장했습니다.』
당시를 회고하는 양정모는 자신의 금메달이 국민적 성원의 결실이었다고 말한다.
낭보를 접한 박정희 대통령은 즉시 김영주 대사를 통해 축전을 보내 낭독케 했고 양이 살던 부산시 동광동 골목길에는 「축 몬트리올 올림픽 양정모 금메달」이라고 쓴 플래카드가 내걸리는 등 전국이 축제의 물결에 휩싸였다.
『8월3일 김포공항에서 시청 앞에 이르는 선수단의 카 퍼레이드 때 수만 명의 시민이 연도에 나온 것을 보고 비로소 금메달 딴것을 실감했어요.』
사실 양정모는 결승에서 오이도프에게 지고도 금메달을 건지는 행운(?)을 잡았다.
양·오이도프는 74년 테헤란 아시안 게임, 이듬해 민스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맞붙어 서로 1승 1패를 기록한 호적수.
오이도프는 예선리그에서 데이비스에게 판정 패, 벌점 3점(당시는 벌점제)을 안고 결선에 올랐는데 양정모는 결선에서 데이비스를 폴로 이겨 무 벌점으로 오이도프를 맞았다.
양정모는 3라운드 중반까지 8-8 동점을 이루는 등 접전을 펼쳤으나 오이도프의 끈질긴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10-8로 판정패했다.
결국 양정모는 벌점 3점을 기록했고 승리한 오이도프는 벌점 1점이 추가돼 4점을 마크, 금메달은 양에게 돌아간 것이다.
한편 여자배구는 3∼4위 전에서 헝가리를 따돌리며 동메달을 차지, 한국 구기사상 최초의 메달을 일궈내 국민들을 또다시 열광시켰다.
『3세트가 고비였어요. 세트 스코어 1-1 동점에서 9-3까지 몰려 한 세트 내준다고 생각했지요. 코칭 스태프도 4세트를 대비한 새로운 작전 구상에 돌입했어요.』
당시 감독 김한수(59·현 대신고 교장)씨는 순간 아찔함을 느꼈다. 경기를 오래 끌면 체력이 약한 우리가 절대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
그러나 참가 8개국 중 최단신인 신체의 불리함을 딛고 조혜정 유경화 유정혜 등이 멩활약, 15-10의 대역전극을 펼치며 4세트도 이겨 결국 세트스코어 3-1로 동메달을 따내 코트를 온통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김상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