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자의 맛있는 골프] 당신도 밥 된다 조심! 또 조심

중앙일보

입력

얼마 전 뒤 팀 언니(캐디·경기보조원)가 그늘집에서 나를 황급히 찾았다.
 
그 언니의 표정은 다소 상기돼 있었다. 조그만 목소리로 비밀 이야기를 하듯이 귓속말을 건넸다. 비밀스런 이야기보따리의 내용은 손님들의 사기골프에 관한 것이었다.
 
"감자 언니, 사실 우리 팀이요. 한 명을 목표로 세 명이 작정하고 사기골프를 치고 있어요. 연습장에서 몇 일간 지켜보고 정보를 입수해서 돈이 있는 분 A에게 치밀하게 다가가 오늘 라운드를 나온 것 같아요."
 
미세하게 떨리는 그녀의 목소리를 타고 얘기는 계속해서 꾸물꾸물 흘러 나왔다.
 
"첫 홀에서 제게 그랬어요. '언냐, 내가 6번(아이언) 달라고 하면 9번 주고 9번 달라고 하면 6번 줘. 오늘 라운드 내내 아무 말 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해. 알겠지!?'"
 
처음에는 순간적으로 무슨 뜻인지 몰랐으나 홀을 거듭할수록 그들이 사기골프를 치고 있는 것을 알게 됐단다. 사실, 사기골프단 세 명은 70대를 치는 싱글 골퍼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오늘 약을 뿌리는 날'이라고 하면서 일부러 동반자 A의 스코어보다 못한 화려한 스코어를 기록했다.
 
세 명의 9홀 스코어는 각각 60타 안팎. 이들의 플레이 내용은 이랬다. 일례로 9번 아이언 거리에서 6번을 잡고 일부러 그린을 훌러덩 오버시켜 OB를 내 트리플보기(기준 타수보다 3타를 더 치는 것·파4 홀이면 7타)나 더블파(기준 타수의 두 배의 스코어를 기록하는 것·파4 홀이면 8타)를 쳐 댔다.
 
또 6번 아이언 거리에서는 9번을 쳐서 짧게 친 후 어프로치 샷 때는 의도적으로 심한 헤드업을 해 토핑 혹은 섕크성 샷을 날렸다.

세 중에 한 사람은 A를 안심시키기 위해 의식적으로 팔과 다리에 장애가 있는 것처럼 절뚝거리면서 걸어 다녔고, A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멀쩡하게 걸어 다니곤 했다. 그러면서 그는 "참나, 장애인 노릇하기도 힘들 고만…"이라며 투덜거리기도 했단다.
 
A를 어느 정도 안심시켰다고 생각한 이들 사기골프단은 "다음에는 이렇게 4명이서 좀더 큰 내기를 하자"며 꼬드겼다. 슬슬 작업가의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이미 자신보다 실력이 한 수 아래 일거라 굳게 믿어버린 A.
 
뒤 팀의 언니는 그 사실을 A고객에게 말하려고 몇 번을 시도했으나 항상 그녀의 곁에는 일행들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었다. 결국 A는 이날 두둑한 목돈(?)을 챙긴 뒤 다음 라운드 때에는 한 타에 10만 원짜리 내기골프를 하기로 그들과 약속한 채 유유히 코스를 빠져 나갔다.
 
이날 우리 팀은 남자 한 분에 여자 세 분이서 동반 라운드를 하고 있었다. 이들 타당 엄청나게 큰 1000원짜리 내기를 하고 있었는데 전반 9홀 네 분 모두 50타 정도의 스코어를 기록했다. 나는 우리 팀 남자 고객께 황급히 말했다 .
 
"고객님도 조심하세요. 저 여자 고객님들이 오늘 약 치는 거 아닐까요. 제 생각에는 우리 팀 여자 고객님들 알고 보면 다들 70대 치실지도 몰라요. 오늘 이렇게 고객님과 비슷한 스코어를 쳐서 다음에 다른 골프장으로 불러내 타당 3000원짜리 내기해서 고객님 경제를 파탄시킬 작정인가 봐요."
 
"그치? 그런 거 같아. 어째, 꽃뱀 냄새가 나."

이 얘기를 들은 여자 고객들은 박장대소 하며 말했다.
 
"이제야 눈치 챈 거야? 사실 우리 70대 쳐. 오늘 적당히 기분 맞춰주고 다음번에 타당 3000원짜리로 도박골프 한번 치려고 했는데 그만 우리 언니 때문에 들켜버렸네.ㅋㅋㅋ"
 
"여러분! 사기골프, 나는 안 당하겠지"라고 방심 방관 무관심하지 마시고 항상 꺼진(무너진) 동반자의 샷도 다시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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