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과 「고치기」-유영난 <번역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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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우리나라를 소개하는 글을 영어로 자주 번역한다. 그러면서 느끼는 것은 한국 독자를 겨냥해서 쓴 글을 그대로 영어로 옮기는 일은 가급적 피하는 것이 좋다는 점이다.
그 이유는 첫째, 우리끼리는 당연시하는 역사적인 사실이나 문화적인 단어들이 외국인에게는 아무런 뜻이 없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하면 한국인 독자는 어느 시대에 어떻게 해서 일어났으며 어떤 후유증이 있었는지 당연히 알고 있지만 전문가가 아닌 일반 외국인들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단어일 뿐이다.
둘째는 집안식구끼리는 할 수 있는 이야기라도 외부사람들과는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우리끼리는 자화자찬을 눈감아 줄 수 있지만 외부사람이 들으면 일단 반감을 품게 되고 사실적인 정보까지 의심하게 된다.
가장 좋기로는 외국인 독자를 마음에 두고 그 사람들 수준·흥미에 맞는 글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제약으로 한글 원고를 영어로 번역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 경우 번역자로서는 편집자 노릇을 겸할 수밖에 없다. 임진왜란의 경우 어느 시대에 일어난 어떤 일이라는 설명을 붙여야 한다. 『한국의 가을 하늘은 세계에서 가장 푸릅니다』는 문장을 만나면 되도록 읽는 사람이 반감을 느끼지 않게 형용사를 붙이거나, 사실적인 묘사로 제한한다.
그 다음에 번역자가 처하는 어려움은 특정한 단어의 남용이다. 문화라는 단어는 그럴듯해 보여서인지 아무 데나 붙는다. 음주문화, 짚신문화, 대학문화 등. 문화라는 단어를 습관, 관습, 형태 등으로 바꾸기도 하고 아예 생략해버려야 할 때도 있다. 그밖에 인기 있는 단어들은 「획기적」「최첨단」을 비롯, 요즘 유행하는 「넉넉한 마음」「홀로서기」등인데 별 의미 없는 미사여구와 함께 곤혹스러운 말들이다. 얼마만큼 고쳐야하나. 항상 스스로에게 묻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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