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국제신뢰부터 쌓아야/자제해야 할 「캄」 파병(특별기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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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아시아 대형역할 주변국서 우려/지구환경보전 등 새역할 앞장을/김용덕 서울대교수·일본사
말썽많던 유엔평화유지활동(PKO) 법안이 드디어 일본 국회를 통과했다. 이로써 일본은 전후 처음으로 그들의 군대를 「유엔깃발아래」 해외에 보낼 수 있게 됐다.
경제대국 일본이 그에 합당한 정치·군사적 힘을 갖추려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하다. 일본이 기존 강대국의 세계질서 유지에 경제지원만 하며 뒤따르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주장에 까닭없이 반대만 할 수는 없다. 더욱이 소련붕괴후 새로운 세계질서 유지자로서 미국과 유럽공동체(EC),그리고 일본이 그 역할을 맡도록 요구하는 국제상황속에서 일본이 그 스스로 역할을 자제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독일은 철저한 반성
그러면 과연 일본은 캄보디아에 자위대를 보내야 하는가. 먼저 일본은 평화유지를 위한 공헌이라는 고위한 명분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반대가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왜 같은 제2차대전 발발국인데도 독일은 국제적 행위에 규제를 받지 않는데 일본만 아직도 반발에 부딪쳐야 하는가 하는 불만의 소리가 일본내 일부에서 일고 있다. 그러나 독·일간의 차이는 바로 국가적 신뢰를 대외적으로 얻었는가 아닌가에 있다. 독일에서는 나치협력 혐의가 드러나면 아직까지도 공인으로서의 자격이 박탈될 만큼 철저하고도 끊임없는 반성을 해왔고 피해국들에는 큰 불만을 사지 않을 만큼 보상을 해주었다.
그러나 일본이 그렇게 철저한 반성과 청산의 과정을 밟았는가라고 물으면 누구에게도 그 답은 유보적일 것이다.
일본 자민당의 지도층 가운데 그 계통이나 성향에서 전전과의 확연한 단절을 보이는 사람들이 오히려 소수로 보인다.
일반국민들의 의식 또한 군국일본에 대해 무감각해져 있거나 심지어 향수를 갖고 있기까지 하다. 이렇게 국가로서의 신뢰를 얻는데 아직도 미진한 일본이 이제 아시아에서 제자리가 마련됐다고 해 대형역할을 자임하려 한다면 그것이 과연 무리없이 국제적 공인을 받을 수 있겠는가.
소련의 붕괴로 미소가 공유하고 있던 국제분쟁의 조정능력은 현실적으로 미국에 맡겨졌다. 앞으로 발생하는 분쟁에 미국이 개입하지 않으려 할때 평화유지군(PKF)에 대한 국제적 요구는 더욱 커질 것이고 이를 매개로한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견은 광범위해지고 적극화할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군사개입은 그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한 점차 증대되는 속성을 갖고 있다.
○마약속성의 군 개입
PKO법안에 대한 반대가 일본 국내에서도 적잖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 일본의 침로를 정한다고 할 수 있는 이 법안에 대해 대규모 국민적 저항도,열띤 지지도 없었다. 이러한 일본인들의 무정견이 바로 PKO법안을 통과시킨 국내적 바탕이었을 것이다.
일본에는 60년대 안보투쟁과 같은 국민적 저항을 통해 새로운 방향을 찾았던 경험이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경제적 번영의 달성 이후 새로운 국가목표 설정에 대한 사려깊은 논의가 일어나기도 전에 PKO를 통한 국제공헌이라는 명분이 국민앞에 제시되었다. 사려깊은 논의를 이끌어가야할 리더십이 등장해 국민여론을 이끌어갔다면 보다 바람직했을 것이다. 여기에는 일본 지식인·언론의 책임이 지적돼야 할 것이다.
○새 모델의 강국기대
과학기술과 경제력에서 가장 앞서가고 있는 일본이 국제적으로 공헌할 길을 꼭 PKO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
일본은 독일과 함께 군부가 세력화돼 있지 않은 특이한 조건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소련붕괴후 일본 자위대는 그 존재 가치를 잃고 있으며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세계적 군축에 앞장설 수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일본은 기존 강대국중 하나로 가담하기보다는 침해받고 있는 인권의 보장과 소수민족의 보호,기술이전을 통한 국가간 균등발전과 지구환경보전을 주도해가는 새로운 모델의 강국이기를 바라야 한다. 오늘날 국제사회가 기대하는 일본은 바로 이같은 구실을 하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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