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더니즘 표절 시비 본격 해부|『문학사상』지 등 잇단 기획특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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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표절시비로 문단이 몸살을 앓고있다. 요즘 젊은 문인들 사이에 유행하는 혼성모방이라는 포스트모던 기법에 의해 예술의 독창성 자체가 위협받고 있다.『A poet once said「God made the country, and man made the town」(성문기본영어 1백75쪽)<자료1>.
『신은 촌락을 만들었으며, 인간은 도시를 만들었다.』(이어령 편 금성사 문장백과대사전 4백 87쪽)<자료2>.
『신은 시골을 만들었고 인간은 도회를 건설했다. 신은 망했다』(이갑수 시 신은 망했다 : 전문)<자료3>.
※91년도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인 이갑수씨의 시는 전체 3행 중 2행이 <자료1>과 <자료2>에 나와있음. 마지막 1행은 니체의「신은 죽었다」를 쉽게 연상시킴. 최소한 시의 3분의2를 베껴 썼음에도「차용」이 되는 건지 논의해 보시기 바람. 표절이냐, 포스트 모던한 기법이냐를 놓고 본지 지상을 통해 논쟁이 벌어지고 있던 얼마 전 한 독자가 보내온 서신내용이다.
문단에서의 표절문제는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문단 등용문인 일간지의 신춘문예나 문예지의 공모에 응모, 당선된 작품이 표절로 판명돼 당선이 취소되는가 하면 기성 문인들이 남의 작품을 사전승낙 없이 도용, 법정싸움까지 가기도 했다.
표절이 문제가 되는 것은 물론 예술의 창조성 존중에 기인된 것이다. 전에는 의도적으로 베꼈든, 읽었던 작품에 감명받아 자신도 모르게 섞여들었든 일단 기존의 작품과 같다고 판명되면 그 작가나 시인은 군소리 없이 표절사실을 부끄럽게 여기며 물러섰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고 있는 표절시비는 그렇지가 않다. 예술의 창조성 자체를 근본적으로 뒤흔들고 있다. 독자들에 대한 사전 양해없이 기존의 작품을 마구 베껴 뒤섞어 편집해놓고도 창조할 것이 더이상 없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포스트 모던 기법이라고 떳떳이 주장한다. 창조성이 아니라 편집성격을 띠고 90년대 들어 만연되고 있는 포스트 모던 기법을「표절이다」고 정면으로 공박한 사람은 젊은 문학평론가 이성욱씨. 금년도 작가세계문학상 수상작인『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가 문단으로부터 표절혐의를 받자 작가 이인화씨는 5월18일자 본지 지면을 통해 자신의 작품은 기존의 여러 작품에서 인용해 짜깁기한 혼성 모방이라는 새 기법을 취했을 뿐 표절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이성욱씨는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는 형식·내용의 공공연함과 명백한 의도성이라는 차용의 요건을 결여한『내가 누구…』는 일종의 도용으로 예술 이전에 작가의 도덕·양심이 문제된다고 5월21일자 본지를 통해 질타했다.
이씨의 이같은 주장에 영문학자 김욱동 교수(서강대)는 5월28일자 지면을 통해 포스트모더니즘의 미덕을 이해 못하는 리얼리즘의 잣대를 버리라고 반박했고, 다시 문학평론가 유중하씨는 진정한 창조를 거부하며 남의 작품을 짜깁기한 포스트모더니즘은 한마디로 해프닝이라며 6월9일자 지면을 통해 리얼리즘을 옹호, 논쟁은 포스트모더니즘 대 리얼리즘으로 비화됐다.
본지 지상을 통해 논쟁이 진행되던 중 독자로부터 수많은 표절 혐의 제보와 함께 요즘 젊은 문인들이 문학을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들이 들어왔다.
한편 이같은 본지 독자의 제보를 접한 이갑수씨는『중학생 때 영어교재에서 외웠던 문장을 의도적으로 차용했다』며『발에 채는 돌멩이처럼 흔한 상식·속담 등을 차용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봐달라』고 말했다.
본지의 이같은 논쟁을 계기로 이제 문예지들이 본격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을 해부하는 기획들을 세우고 있다. 이달 말께 나올『문학사상』7월호는 도정일·권택영·김승옥·최해실씨 등 문학평론가를 동원, 포스트모더니즘은 과연 문학의 창조성을 해체하는 사조여야만 되는가, 문인은 이제 편집자로 전락하고 컴퓨터가 시도, 소설도 합성하는 문학의 시대가 와야만 하는가 등 작금의 시비를 심도있게 다룰 예정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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