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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단체 정당 공천 폐지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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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기초자치단체 정당 공천제의 문제는 선거 때만 있는 것이 아니다. 다음 선거의 공천을 의식해 평시에도 국회의원에게 예속돼 부작용이 심각하다. 한마디로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의 행보가 자유롭지 못해 기초지방자치 발전에 큰 장애가 되고 있는 것이다. 현재도 정당 공천제로 인해 기초의회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특정 정당이 싹쓸이하는 바람에 기초의회가 단체장을 제대로 견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반대로 기초단체장과 기초의회를 서로 다른 정당이 지배하는 경우에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계속해 자치행정이 차질을 빚고 있다. 여하튼 정당 공천제 때문에 지역발전을 위하여 오순도순 지혜를 모아야 할 지방의회가 중앙의 정치논리로 황폐화되고 있다. 그리고 정당 공천제를 통해 지방의 유능한 인재를 발굴해 중앙정치 무대에 서게 한다는 일부 정치권의 논리도 허구다. 지역구 국회의원이 장차 자기에게 도전할 만한 인물은 단체장 후보나 의원 후보로 추천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초자치단체에 대한 정당의 관여는 현재와 같이 정당 공천이 가능한 광역자치단체를 통해 간접적인 방법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기초지방자치는 각 지역의 특성을 살려 일자리를 창출하고 아름다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면서 세계로 뻗어 나가야 하는 21세기 우리의 기본 생존전략이다. 여기에 중앙정치의 논리는 전혀 필요 없고 부작용만 있다. 지역 주민들이 정치 일꾼보다 지역 일꾼을 원한다는 것은 지난달 25일 재.보선 결과 여섯 지역의 시장.군수.구청장 가운데 다섯 곳에서 무소속 후보가 당선된 것이 증거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와 관련해 공천 비리로 입건된 사람 118명 가운데 80명이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은 그 밖에도 지방선거 비리와 관련해 계속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한나라당은 과거의 부패 이미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법무부의 기초자치단체 정당 공천 폐지 법안에 적극 화답해야 한다.

이관희 경찰대 교수·전 한국헌법학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