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편집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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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40대 중반의 남자가 부인의 일로 상담을 원했다. 자기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고 의심해 일상생활에 장애가 많다는 호소였다. 귀가가 늦으면 따지고, 주머니를 뒤지거나 옷의 냄새를 맡기도 하며 직장으로 몇 번씩 전화한다는 것으로, 약주를 하고 들어오는 날에는 더욱 까다로워진다는 것이었다. 5∼6년 전부터 증세가 보였는데 최근에는 극히 나빠진 느낌이라고 했다.
그후 의사의 도움을 받고 부부가 함께 내원했다. 부인은 화려한 복장의 예민한 인상이었고 한가지를 보면 여러 가지를 알 수 있다는 논리를 펴며 모든 책임을 상대방에게 돌리는 사고를 보였으며 남편에 관한 부정망상으로 일관했다. 모든 호소에 대해 진지하게 들어주고 환자를 이해하는 입장을 취하는 가운데 신경과민이 있음을 알게 하고 약물투여를 권했다. 1주일 간격으로 상담과 약물투여를 계속했다.
환자·의사간 믿음의 관계형성에 주력하면서 부정망상에 이르는 정신역동을 파악하려고 노력했고 몇 번의 고비를 넘긴 끝에 3주째부터는 의사를 신뢰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객관적인 현실과 현실평가에 대한 오해·곡해는 없었는가」 등 핵심문제에 들어가며 대화를 계속 가졌다. 8주를 지나며 약물조절과 함께 환자의 현실판단·자아기능의 원활함을 도와주자 부정망상에 대한 의심의 강도가 줄어들면서 현실적응에도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상과 같이 의부증에 관한 망상만을 가진 경우 다른 대인관계의 적응능력에는 커다란 장애가 없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본질문제(의부증)가 해결되기는 거의 어려우며 다소 완화된 상태로 지속되는 것이 통례다. 무의식적 정신역동을 보면 부정과 투사다. 무의식적 욕망·죄책감·죄의식 등이 자아에 용납될 수 없으므로 자기가 아닌 타인의 잘못으로 돌려버리는 경우가 많다.
편집적 성격 또는 정신병질적 성격인 상태에서 올 수 있으며 아버지의 문란한 여성관계 등 성장과정에서 부모의 영향을 받는 수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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