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의 조승희가 더 이상 나오지 않도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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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02면

부끄럽지만 말씀 드리겠습니다. 취재하다가 깜빡 졸았습니다. 볼펜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가 수첩 위에서 미끄러졌습니다.

언제였느냐고요? 지난주 목요일 저녁 무렵 세브란스 정신건강병원에서 집단치료를 참관할 때였습니다. 환자들이 1년차 레지던트 2명과 ‘돼지 똥’ 게임을 하고 토론에 들어갔을 때였습니다.

그러다 한순간 졸음이 확 날아갔습니다. 환자들이 나간 다음 열린 레지던트 회의에서 전임의(연구강사) 분께서 목소리 볼륨을 높였던 것입니다. 다행히도 제가 아니라 레지던트들을 향해서요.

“정말 화가 납니다. 여러분에게 한번 묻고 싶어요. 환자들에게 ‘어펙션(affectionㆍ애정)’을 갖고 있습니까? 게임은 스스로도 즐겁고 흥겨워서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마음을 열 수가 없어요. 치료 차원에서 놀아준다는 식으론 안 됩니다. 그걸 환자들이 못 느낄 것 같습니까?”

물론 정신질환을 치료하려면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하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무게 1.3㎏, 뇌(腦) 속에서 일어난 문제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위나 간이 안 좋을 때 내과를 찾듯이 마음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땐 정신과 문을 두드려야 합니다. 하지만 몇 달이, 몇 년이 걸릴지 모를 약물치료에 성공하려면 가족, 친구, 직장 동료의 정서적 뒷받침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약을 먹게 하는 약은 아직 개발돼 있지 않습니다.

본인이 정신과에 가는 것을 꺼리더라도 용기를 주고 격려해서 병원으로 이끌어야 합니다.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지만 완치시킬 방법이 빤히 보이는데도 ‘동네에 소문날까 봐’ ‘앞길 망칠까 봐’ 자꾸 다른 방법을 찾는 것은 투병기간을 길게 할 뿐입니다. 병만 악화시킬 뿐입니다.

이번 스페셜 리포트는 조승희군의 미국 버지니아공대 총격 참사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마음의 병’에 보다 총체적으로 접근해 봐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습니다. 폐쇄병동을 찾아 정신질환의 실태를 취재했고, 질환의 원인과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짚었습니다. 병원에서 사용하는 심리검사표(체크리스트)도 구해 실었습니다. 치료 현장의 모습과 다양한 치료ㆍ예방 방법을 담으려 노력했습니다.

취재를 마친 지금, 병원 안의 환자보다 병원 밖에서 ‘투명인간’으로 살아가는 ‘숨겨진 질환자’들에게 더 마음이 쓰입니다. 조승희군도 그중 하나였을 것이란 생각이 안타까움을 더합니다.

오늘 저녁 따뜻한 차 한잔 드시면서 가족과 함께 서로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요? 모두들 방바닥에 엎드려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표에 체크도 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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