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리 정선에 시 축제 활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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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젊은 시인들이 남한의 물 중 가장 오지인 강원도 정선에 모였다. 정선아라리 문화연구소는 6∼7일 이틀간 정선 아라리민요 유적기행 및 전국 젊은 시동인 시의 축제를 정선일원에서 가졌다.
이번 행사에는 대구·대전·부산·서울 등 전국에서 모인 시인들과 정선지역 문인·독자 1백여명이 참가했다.
『조랑조랑 흘러가는 강물 소리엔 귀를 막고요/앞산뒷산엔 빨랫줄을 매고 살지요/장정들은 밭에 나가 흙더미를 일구고/아낙들은 수수밭 고랑에 엎드려 땅의 소리를 듣는답니다/마음에 맺힌 건 호미 끌에 걸려 넘어지는 흙덩이마냥/그냥 푸석푸석 깨뜨리며 살아가지요.』(박세현의 시 『앞산뒷산』중)
사이에 간짓대 하나 걸치고 빨래를 널어도 될 정도로 첩첩이 얹힌 산, 사이사이를 굽이치는 시내와 강들. 그렇게 해서 이름 붙여진 산수향 정선은 일상과 환경에 찌든 삶에는 마지막 유토피아다. 그 산에 묻힌 고독, 물에 갇힌 사랑의 한과 건강한 극복을 담고 오늘도 불리는 아라리가 있는 정선은 시인들에게 시를 절로 나오게 하는 시심의 고향이기도 하다.
산자락, 물줄기 따라 아라리가락 그득한 정선에서 서울중심의 문화가 아니라 시를 통한 전국토 문화의 수평적 연결을 외치며 작년 말 결성된 「전국 젊은 시동인」이 첫 번째 시의 축제 및 기행을 가진 것이다.
6일 오후 7시 정선읍 공공도서관에서 열린 시의 축제에는 시인·정선읍민 1백여명이 참가해 시 낭송, 자신의 고향소개, 정선과 정선아라리에 대한 강연 등으로 진행됐다.
『오대산 골짜기 흘러온 물은/임 그리워 밤잠 설친 물/임계천 흘러나린 물은 일편단심/네 마음의 물/저 물은 뒤엉켜 물살 안고 도는데/우리는 왜 못 흐르나?/몽돌밭 자갈돌이 물 맑아 아름다운가/아우라지 강물이 정들어 깊었더냐./…』
한번 와본 정선땅이 고향인양 잊혀지지 않아 버스-기차-버스를 갈아타며 다시 찾았다는 대구시인 서지월씨는 근작시 『아우라지 처녀』를 낭송했다. 물이 불어 강 건너 임을 만나지 못한 아우라지 처녀의 한과 남북으로, 다시 각 도로 갈린 분단의 한을 노래하려 했다한다.
한편 정선 시인이자 정선아라리 문화연구소장인 진용선씨는 『정선아라리에는 이 땅의 물 냄새·흙 냄새는 물론 사랑·충절·통일 등 인간세상의 모든 것이 배어있다』며 『세상사와 자연이 함께 아우러져 돌아가는 정선아라리 정서를 오늘의 시에 살려 자연과 함께 하는 건강한 정신을 찾자』고 강조했다. 지난해 정선의 문화예술인·기업인이 뜻을 모아 설립한 정선아라리 문화연구소는 전국의 시인들을 불러들여 갖는 시의 축제 및 심포지엄 개최, 정선아라리 연구·자료집 등을 펴내며 아라리의 전국적 보급에 힘쓰고 있다.
다음날 참가시인들은 오대산·태백산에서 내려온 목재를 엮은 뗏목 위에 아라리를 실어 나르던 아우라지 강변으로 찾아갔다.
남한강 뗏목의 발원지이기도 한 이곳에서 태어나 6·25 직전까지 뗏목을 탔던 떼꾼이자 강원도 무형문화재 1호인 정선아라리 기능보유자 최봉출 옹으로부터 「나의 뗏목생활과 아라리」를 주제로 한 강변강연과 함께 구성진 아라리 한 가락도 들었다.
『눈이 올라나 비가 올라나 억수장마 질라나/만수산 검은 구름이 막 모여든다』고 최옹이 가락을 뽑자 비가 몰려오기 시작했다. 「억수장마」는 아우라지강 양쪽으로 연인을 나눈 한이기도 하지만 떼꾼들에게는 남한강 시발의 옅은 강 아우라지에서 뗏목을 띄울 수 있게 하는 고마운 비이기도 하다. 그렇게 자연에 대한 한과 환희가 아우라지에서 아우러져 아라리로 우리 마음속에 흘러들고 있는 것이다. 자꾸 분열되어 총체성을 잃어 가는 우리네 삶에 아우라지강은 함께 어우러져라 가르치고 있다. <이경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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