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곳”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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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호 09면

“토요일 오후 2시 정도에 보자.”

-소설가 정이현과 그의 소설집

소설가 정이현(35)씨는 대학 시절 “토요일 오후 2시 맥도날드에서 보자”고 약속 시간과 장소를 잡은 적이 있다.

요즘은 약속 시간을 2시 ‘정도’라고 잡기도 한다. 제시간에 도착한 사람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한 시간쯤 늦을 거 같아”라고 통보해주면 맘대로 지각하는 일도 피차 덜 미안하다. ‘코리안 타임’의 부활이 아니다. 약속 장소가 스타벅스일 때 그렇다.

정씨에게 스타벅스는 기다리기 좋은 곳이다. 스타벅스에서라면 혼자서도 잘 노는 젊은이들이 혼자 있어도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가 보기에 서울의 젊은이들에게 스타벅스는 이제 그 브랜드와 이미지를 소비한다는 의식도 없이 소비하는 공간이다. 그의 한 친구는 도서관 대신 스타벅스에서 이어폰 끼고 영어 공부를 한다.

정씨가 낸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2003)와 장편 『달콤한 나의 도시』(2006)에서 스타벅스는 각각 한두 차례씩 나온다. 그의 작품이 당대인의 의식주와 문화적 감각을 보란 듯이 적확히 집어내는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뭘 먹고 입으며 어디서 누굴 만나는지가 그 사람을 구성하는 주요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스타벅스의 상징성이 작품의 표면 아래에 있기를 바란다. 본래 『달콤한 나의 도시』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 ‘은수’가 스타벅스를 나서는 것이었다. 작가는 그 부분을 4쇄 때부터 빼버렸다. 사람과 그의 삶이 특정 공간의 이미지나 상징성에 함몰될까 우려해서다.

정씨는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이효석문학상을, 단편 ‘삼풍백화점’으로 현대문학상을 탔다.

올여름 두 번째 창작집을 내고, 계간문예지 가을호부터 새 장편을 연재한다. 『달콤한 나의 도시』는 연말께 일본·중국·대만·이탈리아에서 잇따라 번역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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