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영 지음 청년사, 388쪽 1만9800원
"독창성은 다른 텍스트들과의 관계 속에서 탄생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는 '모든 텍스트는 인용의 모자이크로 구축되어 있으며 텍스트는 또 다른 텍스트를 흡수 변형한 것이다.'라고 했다."
지은이의 글쓰기 방법을 정의하는데에는 책에 인용된 이 문구보다 더 들어맞는 말은 없을 듯하다. 지은이는 로맨스.가족애.섹스.스킨십부터 권력.전쟁 등의 사회적 쾌락, 산책.여행.음주 등의 여가, 독서.신앙.교육 등의 지적 쾌락까지 '쾌락'에 관한 총 41개 키워드를 다뤘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텍스트가 인용됐다. 책의 일부만 보면 '여러 책을 잘 짬뽕했다'는 정도로 가볍게 여길 수 있지만 책장을 뒤로 넘길수록 만만치 않은 지은이의 공력에 혀를 내두르게 된다.
방대한 독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잡다한 지식이 먼저 눈에 띈다. 예컨대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매춘은 수메르의 '신전 창부', 즉 종교에 의해 행해졌고 최초의 포주는 사제였단다. 알코올 중독이 등장한 건 술을 대량 생산하고 저장.유통하게 된 19세기 산업혁명 이후. 스웨덴 의사 마뉴스 후스가 1849년 '알코올 중독'이란 단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지은이는 '민족주의'같은 데에까지 쾌락의 범위를 넓힌다. 에릭 홉스봄에 따르면 '국어'란 용어가 등장한 건 프랑스 혁명 이후의 일이란다.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집단 속에 속해 있을 때 안도감을 느끼는 일체감의 쾌락, 즉 민족주의가 발흥했다는 것이다.
하나하나 예를 들어 설명하기엔 책이 다루는 내용이 너무나 방대하다. 책 말미에 한국어.영어.프랑스어.독일어로 된 참고서적 목록만 12쪽에 달할 정도다. 당연히 글 속에서 또 다른 책으로 연결되는 길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41개 주제 중 특정 키워드의 내용이 특히 신선하게 느껴진다면 평소 그 분야 독서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리라. 각 장마다 나름의 결론을 끌어내는 지은이의 시각도 참고할만하다.
"성실한 독서가는 책을 참고로 자신의 텍스트를 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다"는 자신의 말대로, 그는 성실한 독서가임을 증명한다.
이경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