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영 가족 소설 - 즐거운 나의 집 [2부] 즐거운 집(4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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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그림=김태헌

엄마가 푸하하하, 웃었다. 서저마 아줌마는 난처한 표정이었다. 막딸이 아줌마는 눈치도 없이 다시 말을 이어갔다.

"내가 옆에서 가만히 보니까 눈이 너무 높으신 거 같아요. 박사님이라 그러시겠지만…. 그래도 박사도 여자잖아요. 결혼도 해보고 애도 낳아보고. 그리고 이 나이에 연애해보세요. 아이들 눈치가 좀 보여서 그렇지 마음은 열여섯이에요."

"저, 남자 필요 없어요."

서저마 아줌마는 단호했다. 더군다나 오늘 영 일진이 좋지 않네, 하는 표정이었다. 엄마가 언제나처럼 서저마 아줌마를 놀리며 끼어들었다.

"막딸 아줌마가 언제 남자 만나라고 했어? 산에 가라고 했지. 외갈매기 산악회라…. 이름도 멋있잖아."

서저마 아줌마는 울상이 되었다. 엄마는 그것이 재미있다는 듯 더 깔깔 웃으며 말했다.

"아줌마, 내가 아줌마 좋은 사람 만나게 해 달라고 늘 기도했는데 참 잘되었네요…. 서저마 언니, 이제 언니 차례네, 언니 위해서도 기도할까?"

서저마 아줌마는 발끈하더니 두 손을 휘휘 저었다.

"절대로 기도하지 마라. 난…사실 시간이 없어. 절대로 남자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말라구. 남자는 필요 없다구. 절대로 그런 기도는 하면 안 돼, 정말 안 돼."

엄마는 계속 웃었다. 나도 슬그머니 웃음이 나왔다. 엄마가 기도한다고 해서 신이 당장 서저마 아줌마에게 결혼을 명령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서저마 아줌마는 남자 이야기만 나오면 언제나 저랬다. 그러면서도 연애 소설이나 연애 드라마는 누구보다 열심히 보았다. 내가 엄마가 늦는 날 텔레비전 앞에서 넋을 잃고 있는 아줌마에게, "아줌마, 그거 재밌어요?"하고 물으면 "아아니, 그냥 보는 거야. 심심해서…"하고 대답했다. 한번은 엄마가 신문에 연애 소설을 연재하고 있는데 나에게 말했다.

"위녕, 엄마가 이 둘이 결국 이루어진다고 하디? 아니라고 하디?"

"직접 물어보세요. 난 별로 관심 없는데."

내가 말하자 서저마 아줌마는 그러고 말았는데. 나중에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엄마는 더욱 깔깔 웃으며 말했다.

"나한테도 몇 번 묻는데 내가 절대로 말 안 해줬어, 이제까지 내 소설 중에서 서저마 아줌마가 그토록 결말을 궁금해하는 건 처음이거든."

엄마가 장난꾸러기 같은 표정으로 눈을 반짝거리며 막딸 아줌마에게 물었다.

"아줌마, 그래 커플 티 입고 여행 가서 신방을 차렸어요?"

막딸 아줌마는 조금 취한 듯했다. 아줌마는 정말 새색시처럼 고개를 외로 꼬더니, "그럼요" 했다.

"어땠어요?"

엄마가 다시 물었다.

"어떻긴? 아주 시이원합디다."

막딸 아줌마의 대답은 단호했고 정말 시이원, 했다. 세 여자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기 시작했다. 나도 숯불에 굽던 오징어를 뒤집다 말고 따라 웃었다. 엄마가 아니, 여기 네가 있었네, 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더니 헛기침을 두어 번 했다.

"위녕, 너는 그만 들어가거라."

"왜에?"

"아니, 어른들 이야기하는데 넌 아직 열여덟이잖아. 미성년자고."

내가 입을 삐죽이고 있는데 다시 막딸 아줌마의 휴대폰이 울렸다. 우리 같으면 문자 메시지로 할 텐데 좀 시끄러웠다. 내일은 막딸 아줌마한테 문자 메시지 보내는 법을 가르쳐 드려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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