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와 객석] 뮤지컬 '풀몬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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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지오다노 스트립 바. 푸른 제복을 입은 여섯 명의 남자가 멋지게 춤을 춘다. 그도 잠시 재킷.벨트.바지를 한꺼풀씩 벗어던지자 남은 것은 몸뚱이와 덜렁 팬티 한 장. 객석이 숨을 죽인 순간 백라이트(관객에게 정면으로 쏘는 빛)가 켜지면서 남자들은 남은 팬티 한 장마저 홀딱 벗는다.

이 홀딱쇼에 관객은 섹시함을 느낄까? 혹은 민망해질까? 일말의 감정선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 이상의 느낌을 가질 것 같다.

뮤지컬 '풀몬티'(1월 18일까지.한전아츠풀센터)는 가슴 저편에 찡한 여운을 남긴다.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최루성 멜로는 아니다. 그냥 보통 사람이라면 겪게 되는 갈등과 좌절.모멸감을 조금씩 끄집어 내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댈 뿐이다.

'풀몬티'는 갈 데까지 간 남자들의 얘기다. 제목인 'full monty'는 '홀딱 벗는다'는 의미보다는 '끝까지 간다(going full monty)'는 영국식 속어로 이해해야 한다.

영국의 한 쇠락한 도시에선 철강 노동자들이 실업 급여를 타며 근근이 살고 있다. 제리(변우민)는 빈털터리에 이혼까지 당했다. 데이브(이무현)는 실직의 상처로 인해 아내와의 잠자리를 기피한다. 말콤(김장섭)은 살길이 막막해 자살을 감행한다.

주인공인 여섯명의 남자들은 이렇듯 남자 구실, 가장 구실을 못하며 빌빌댄다. 그러던 어느날 양육비가 없어 아들을 빼앗기게 된 제리는 돈을 벌기로 작정한다. 맨몸뚱이밖에 없는 그가 착안해 낸 것은 바로 스트립쇼. 돈을 벌기 위해 모여든 이들은 근육질 몸매도, 춤을 잘 추는 것도 아니지만 '평범한 남자들의 홀딱쇼'라는 컨셉트로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작품은 영화를 소재로 브로드웨이에서 만든 뮤지컬이다. '거미여인의 키스'로 토니상을 받은 테렌스 맥낼리가 극작한 것으로, 노래보다는 드라마가 강한 편이다. 때문인지 뮤지컬 전문 배우가 아닌 변우민.이무현.임하룡의 연기가 자연스레 뮤지컬에 녹아든다. 반면 이들의 노래는 노래방 수준 이상을 기대하기 힘들다.

무대가 너무 커 장면 전환이 재빨리 이뤄지지 않는 데다 암전이 너무 잦은 것은 옥에 티다.

한국판 '풀몬티' 공연을 앞두고 마지막 스트립 장면에서 '다 벗나' '안 벗나'를 두고 말이 많았다. 제작진은 이들이 팬티를 벗는 순간 백라이트를 쏘아 관객이 물건(?)을 제대로 볼 수 없게끔 가리기 수법을 썼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다 벗은 걸까? 수수께끼 같은 힌트 하나. '벗어도 벗은 몸이 아니다'다. 02-3141-8425.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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