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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외교의 핵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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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아베 총리는 중국과 한국의 관계를 조정하는 쪽으로 신속히 움직였다. 지난해 10월 그의 베이징 방문은 최근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의 방일 기간 중에 나타난 인상적인 성과들의 기초를 닦았다. 원 총리는 갈등의 소지가 있는 역사적 기억들에 대한 언급을 삼갔다. 일본 국회에서 그가 한 연설은 의원들의 열광적인 박수를 받았다. 고위급 경제 대화를 통해 에너지.원전건설.환경문제.항공.사법.무역 등 광범위한 분야에 걸친 협력이 선언됐다. 아베 총리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상호방문도 논의됐다.

지난주 아베의 미국 방문도 기간이 짧긴 했지만 역시 목표를 달성했다. 그는 국내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미.일 동맹의 확실한 수호자라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종군위안부 문제를 논의한 총리와 미 의회 지도자들의 면담은 큰 불상사 없이 끝났다. 북한과의 협상 방식을 둘러싼 양국 간 이견은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아베 방미의 핵심은 언론에서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가 일본의 전후 체제 극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한 부분이다. 아베는 일본 일각의 새로운 세계관을 대변하고 있다. 역사문제에 대한 이른바 '자기 비하'의 중단, 헌법 개정이나 재해석을 통한 국가안보에 대한 법적 근거 조정, 집단적 자위권의 강력한 구현 등이 그것이다. 일본의 방어 능력에 대해 스스로 부과한 각종 제한을 수정하고, 유엔의 평화유지활동 지원 등을 포함한 국제안보에서의 새로운 역할을 담당하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지위를 얻으려고 노력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북한의 핵 야망, 중국의 지속적 성장과 같은 새로운 위기상황에 직면해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변화시키려 애쓰고 있다. 중국과 전략적 라이벌 관계에 놓이는 것을 피하는 한편, 다른 국가와의 관계를 훼손하면서까지 미국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정책도 피하려 한다. 일본은 이웃 아시아 국가들과 긴밀한 지역 공동체를 발전시키려는 구상을 갖고 있다. 물론 일본은 그러한 공동체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중국과 경쟁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일본은 중국과의 완전한 화해가 없이는 어떠한 지역 공동체 논의도 진척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아베는 중국과 경제적 상호 연관성을 강화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깨닫고 있다.

아베 총리는 한편으로 중국의 현대화를 돕고, 다른 한편으론 미국과의 동맹을 업그레이드하는 이중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에서도 일본의 이 같은 전략 노선은 공감을 얻고 있다. 미국은 중국과의 경쟁을 자제하려는 일본의 노력을 환영하고 있다.

아베 정권이 국제안보에서 더욱 큰 역할을 맡으려는 자세도 바람직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본이 지금까지 국방정책에 대한 세 가지 자체 제한, 즉 비핵화 원칙 고수, 국방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1% 이내로 제한하는 것, 공격적 무기 확보 자제 등을 유지하면서 미국 및 중국과의 관계를 강화시켜온 점을 높이 평가한다.

하지만 한.일 관계에서 일본과 다른 국가들의 관계 발전과 비견할 만한 성과들이 나오지 않고 있는 것은 유감이다.

마이클 아머코스트 전 브루킹스연구소 소장
정리=유철종 기자